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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ug 09. 2022

인생의 바다에서 기적을 길어 올리는 일

 보란 듯이 기적을 길어 올릴 수 없는 걸까. 우리가 펼쳐 놓았던 인생이라는 바다에는, 그런 생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우리의 바다에 없는 것이라면, 그럼 기적은 어쩌면 환상 같은 것 아닐까.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존재할 수도 없는 것 아닐까.


 삶을 꾸역꾸역 헤엄쳐가면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나는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맏딸로서, 언니로서, 누나로서, 취준생으로서, 사회초년생으로서, 작가로서, 출판인으로서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했기에 기대지도 않았고, 힘들다고 투정 부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힘든 마음이 들 때마다, 아이같이 징징거리기만 할 거냐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그땐 그런 마음이 영원할 줄 알았다.


 가장 많은 애착을 가졌던 것은, 단연 작가와 출판이었다. 그건 나에게 너무나 멀게 느껴졌으니까. 애초에 기적을 길어 올리는 일 같았으니까. 기적을 길어 올리기 위해선, 환상을 현실로 이뤄내야만 했다. 그때 당시 그건, 단순히 내 몸과 영혼만 갈아 넣으면 이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타인들의 성공담을 들으면, 어려운 시기일수록 악착같이 꿈에게 매달렸다고들 했으니까. 그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나에게 꼭 맞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내가 우울해할 때마다 친구들은, 그래도 남들보다 앞서있으니 너무 울적해있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남들과 비교하면, 나는 조금 나은 인생이라고. 그러나 그 말은 들었을 때는 잠깐 위안이 되었다. 나는 또 쉽게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과연 남들과 나은 점이 무엇이 있을까.


 뭔가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간들. 남들보다 한걸음 더 앞서 있다는 말이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래도 내가 열심히 살았던 날들에 대한 수고가 부정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 열심히 살았구나, 그랬기에 지금에 머무를 수 있는 거였구나.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세워둔 '최고'라는 목표 때문에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이루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걸 더 갈망하기 때문에 이렇게 울적해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든 걸 내려놓은 현재의 나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대낮이면 이따금 우울해졌고, 밤이면 원인 모를 감정에 사무쳐 몇 시간씩 울곤 했다. 왜 이렇게 매일같이 우울해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정말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럼, 최고가 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우리는 항상 무언갈 꿈꿔야만 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야만 할까. 거의 모든 걸 내려놓은 지금, 내게 생긴 의구심들이다.


 내 인생에 기적이 있을까. 이제는 나에게 터무니없는, 그런 환상 같은 기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을 바라고 무언가를 행하기엔, 그 목표가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나는 앞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채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 반짝반짝하고 아름다운 것에 매료된 꿈, 환상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냥 하루, 하루 내가 해야 할 것들만 집중하며 사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저금을 하고, 글을 쓰고, 적당히 쉬면서. 지킬 수도 없는 수많은 내 모습들에 욕심내지 않으면서.


 아직도 나에게는 모든 걸 내려놓은 나에게 생긴 의구심들을 해소할만한 명확한 답이 없다. 그렇기에 이따금 우울해지고, 버겁다고 느껴지는 것일 테다. 코밑까지 차오른 버거움을 없앨 수 없다면, 하루하루 적당한 휴식을 취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이런 삶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나와 삶에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우선 내가 실험적으로 해볼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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