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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ug 11. 2022

사람들은 의미 없는 것에만 집착하지


 무언갈 열심히 하다 보면,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 사람들의 심리인지, 이상하게 모든 사람들은 이 '숫자'와 '수치'로 모든 것들을 판별한다. 저 사람이 콘텐츠로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유명인사인지 아닌지 그런 것들을. SNS에 표기되는 팔로우 수나 구독자 수 같은 것들. 그 보이는 수를 늘리기 위해 허위로 숫자를 불리기도 하고, 유명인사인 척 행세하고 싶어 진다.


 그건 우리가 죽기 살기로 불리려고 하는 '부(富)'도 마찬가지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한다. 주식을 하기도 하고, 도박을 하기도 한다. 돈, 명예를 위해.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눈에 가장 잘 띄는 것, 바로 숫자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숫자에 집착하다 보면, 사람은 조급함에 끌려다니게 된다. 오락가락하는 매출과 사람들의 관심심을 잡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뭐라도 발 벗고 나서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가진 것은 오직 시간과 열정뿐이니, 그런 것들을 갈아 넣으려 무진장 애를 쓴다. 잠도 안 자고, 밥도 거르며 온 신경을 거기에만 집중시킨다. 그게 대체 뭐라고. 만들어진 명예가 대체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이다.


 그 조급함이라는 건 바닥을 찍고 나면 처절함으로 바뀐다. 진짜 이것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이게 안되니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결국에는 '난 왜 살고 있지?'라는 의문까지 들게 만든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알량한 숫자가, 아무것도 아닌 수치가 날 판별하는 전부라고 말이다. 점점 숫자에 매몰되어갔고, 영혼은 망가져갔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가정해보자. 가진 돈은 휴짓조각이 되고, 팔로우와 구독에 애썼던 채널도 없던 것이 된다. 하나의 거대한 회사가 없어지거나 세상이 망하면 그렇게 된다. 내가 어떤 사업을 꾸리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처럼 고정수입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매출이 달라진다. 그렇게 숫자와 관련된 것들은 변수가 컸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숫자 때문에, 마치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몇 천명, 몇 만 명의 구독자가 있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람이 날 가족처럼 생각하거나,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부풀려진 숫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찌 세상이 그리 쉽게 멸망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러니 돈과 부에 집착해야만 마음이 편하다면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런 집착이 내 안의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은 깨닫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숫자가 증발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 이름의 세상도 망가져 일어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할까. 숫자에 매달린 계획만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집착하던 숫자의 세상이 멸망해버렸을 때, 그토록 욕심내던 부와 명예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을 때, 그때 나는 무슨 동력으로 살아갈 것인가? 왜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는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그 숫자에 집중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SNS는 과열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SNS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과시하기에 바빴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신들의 계정을 팔로우해주기를, 구독해주기를 바랐다. 모두가 그럴 뿐이었다. SNS의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환상 속에 젖어 살다,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떴다. 집착이 끝나니 환멸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현실 앞에 산산조각 난 내 영혼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갈아 넣어도 오르지 않는 숫자들 때문에, 부서져버린 나의 세상을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거의 몇 달은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오기만 했던가.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세상에, 나는 어쩌면 타인의 챙김을 받고 싶었던가. 그동안 난 무의미한 것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토록 쫓아 달려오기만 했던가.


 오늘도 사람들은 의미 없는 것에 집착한다. 소유하면 할수록 욕심은 커지고, 집착은 진해진다는 걸, 그게 무섭도록 나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번아웃이 온 뒤, 다시 또 열심히 살아갈 채비를 한다. 그렇게 몇 번이나 쓰러지고 일어남을 반복하는 사이, 닳고 닳아져 가는 내 영혼은 세상에 구원조차 바랄 수 없게 된다. 그걸 자신이 원치 않았으니까. 오직 성공만을 바라니까. 불투명하지만 완벽해질 나의 미래를 꿈꾸니까. 나를 돌보는 일 따위는 나중에 해도 되는 거니까.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마음에 병이 쌓인다. 


 워커홀릭으로 바삐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슴 깊이 느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일으킬 수 있을 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숫자의 세상은 내 영혼을 갈아 넣는다고 해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나 자신의 세상을 견고하게 가꾸는 것만이 의미가 있는 것임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것을 꼭 잊지 않고 챙겼으면 좋겠다고. 나도 한때 열정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오히려 그 녀석이 언젠가 식어 없어질까 두려워하던 때도 있었다. 열정이 죽으면, 그날은 정말 내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늘 열심히 살아야 했고, 성실해야만 했다.


 그러나 열정이 죽어 없어져보니 알겠다. 난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벌거벗겨져 보니, 그때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었다. 죽지 않고 숨죽이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다. 내가 환상이라는 마법에 젖어있었던 기간 동안, 아주 길고도 긴 그 기간 동안 말이다. 그 허망함 속에 내 병든 내 마음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진즉 내 마음을 내려다볼걸. 밤마다 두려워하며 눈물짓는 날이 오기 전까지도 나는 자책만을 하며 죽은 영혼의 시체에 채찍만 가했다. 난 죽은 와중에도 계속 죽어가야만 했다.


 마음이 병들기 전에, 내 세상부터 먼저 가꾸자. 우리가 집착하는 그 숫자들은 달아날 기회만 엿보고 있지만, 우리가 돌보지 않는 마음은 언제고 내 곁에 있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봐라. 나는 정말 일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 어쩌면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있던 어떤 두려움 때문에 일을 사랑하는 거라고 자신을 세뇌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부디, 자신의 세상이 완전히 황폐해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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