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Aug 16. 2022

누군가 나에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말들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돼."

 나는 늘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것이 어떤 직업이었든, 가치관이었든, 인간상이었든 명확했던 목표가 조금씩 불투명해지더라도, 나는 꼭 '무엇'이 되고자 하는 방향이 있었다. 그것이 있었기에 길을 잃더라도, 가고자 하는 목표는 뚜렷했다. 수단이 달랐을 뿐이지,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든 전부 갈아 넣었으니까.


 어른들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넌 꿈이 뭐니?"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괴로운 삶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똑같이 묻곤 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꿈이든,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질문이 정말 괴로운 질문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욕구,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속에서 열망하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단지 그걸 찾지 못한 것뿐이라고. 인간은 뜨거운 욕망을 그러쥔 채 사는 생물이므로. 그것이 물질적이든 명예든, 너무나 거창해서 누군가에게 대놓고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쑥스러운 꿈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갖고 산다'는 말을 맹신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네 안에 꿈이 있을 거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꿈을 찾아도 찾을 수 없던 사람들의 속은 어떻게 타들어가는지도 공감하지 못한 채.


 명확했던 꿈이 불투명해지고, 이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 양 증발해버렸을 때, 나는 세상의 전부를 잃은 기분이었다. 길을 잃어도 가야 할 방향만은 명확히 알았던 순간들이, 그 노력들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 난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악에 받쳐 살았을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왜 난 힘겹게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만 했을까. 왜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 한평생 몸과 마음을 바쳐 살아야만 하는 걸까. 꿈 없이 사는 것은 참된 삶이 아닐까. 그럼 지금 나의 하루들은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일까. 지난날, 열심히 살았던 내 시간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일까. 난 무엇을 위해 살아야만 할까, 대체 무엇을 위해.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것은 아주 묵직한 닻이 되어 내 발에 사슬을 감았다.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심해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숨을 참는 것도 한계였다. 이렇게 나는 죽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한 어른이 어떤 한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그 질문에 꼬마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어른이 다시 되물었다.


 "엄청 먼 훗날의 얘기라도 말이야. 그냥 폭넓게라도 네가 하고 싶은 것 있잖아."


 아이는 고심한 끝에 대답했다.


 "누군가를 수호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자 어른이 무릎을 딱 치며 말했다.


 "아, 그럼 넌 경찰이 되고 싶은 거구나!"




 나는 그 대화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꿈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저 어른처럼 똑같이 질문하고, 똑같이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타인이 어떻게 살든,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이나 방향 또한 스스로 깨닫고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나, 꿈을 찾지 못해 곤란해하는 이들에게 답을 꼭 쥐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들 땐 이것을 해봐, 저것을 해봐….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나의 답변이 오히려 삶에 혼선이나 훼방을 주고 있다는 건 전혀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타인과 대화를 하며, 나의 삶의 방식이 옳다고 고집해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옳고 그른 것은 없었다. 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어떻고, 꿈을 향해 온 몸과 영혼을 갈아 넣으면 또 어떠랴. 어떻게 살든 그것 또한 삶의 한 방식인 것을. 그러니 꼭 어떤 특정 직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지 않아도, 대단한 꿈을 꾸며 목표지향적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루를 힘겹게 살아 내는 것 또한 삶의 한 방법이니 말이다.


 어쩌면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 낸 틀이 아닐까. 세상은 늘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질문만 던졌다.


 "넌 꿈이 뭐야?"라고.


 왜 우리는 꼭 꿈을 가진 채 살아야만 할까. 때론 꿈 없이 뒹굴거려도 되는, 열심히만 살았던 발열된 인생을 조금 식혀갈 줄도 아는, 그래도 결코 뒤처지지도 실패하지도 않다는 걸 말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냥 될 대로 살아."


 목표를 세워봤자, 꿈을 꿔봤자 계획대로 살아가지지 않는 것이 세상이었다. 아주 단기적인 목표라도, 그게 나의 소소한 행복이라면 그렇게 살아도 되었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것이,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것이, 사람들을 만나 술 한잔 기울이고 노는 것이,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것이 삶의 낙이라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루하루 인생을 허비하는 것 같고,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그래도 돼.
 꿈이 없어도 되고, 목표가 없어도 되고, 게을러져도 돼.
 매 순간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어.
 내 할 도리만 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든 살아도 괜찮아.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살아가게 될 텐데, 지금쯤 방황이야 아무래도 좋아.
자신만 행복하면 돼.
그거면 돼.


작가의 이전글 일기를 쓰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