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가기 시작했던 건,
갑자기 불쑥 용기가 솟아나거나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는 둥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강의를 들어보라는 둥
생각해보면,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그런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던 게 아니라,
단지 내면의 우울감에 가려져 있던 것뿐이니까.
제 속을 제대로 들여다 보고
두려움에 맞서 일어나게 된다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으니까.
삶에 대해 큰 회의감과 우울감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저 따뜻한 포옹과 위로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보다
누구나 겪는 시련이라는 말보다
다정한 침묵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힘이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는 말보다
그냥 지금은 이렇게 주저앉아 있어도 괜찮다는 말이
무너진 자신의 세상에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더 좋은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이 결국엔 삶의 동력이 되었다.
사방이 온통 어두운 가면을 쓴 감정들이 득실거릴 때,
눈물지으며 홀로 자책하고 있을 때,
그 곁을 지키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그 품에서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서 네가 많이 지쳐있었던가 보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응어리졌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가 이른 봄볕에 스르르 녹는 눈처럼 연약해질 수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전문가의 명쾌한 해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파란만장한 인생살이의 주인공에게 조언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홀로 외롭게 어둔 감정과 투쟁하는 그 타이밍에
단지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품과 다정한 위로 한마디가
그 어떤 행동과 말보다도 더욱더 뜨거울 수 있다는 걸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지쳐있는 순간에, 꼭 한 번은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