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는 지쳐버린 나 자신을 탓하곤 했다. 언젠가 "건강관리를 스스로 하지 못하면, 그것 또한 자신의 탓"이라며 꾸짖던 선배의 목소리가 떠올렸다. 이렇게 마음가짐이 해이해진 것도 다 내 탓이라고, 내가 날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지쳐가는데도 채찍을 들었다. 단순히 내가 게으른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정신 차리고 살아가려고 해도, 세상의 잣대와 나의 고집은 그리 쉽게 꺾이지 않았다. 반드시 꿈을 이루고 말겠다는 포부가 내 숨통을 조여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나의 아집은 지쳐있는 나를 채찍질하며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만들어낸 '나'라는 이미지, 열정, 도전 같은 키워드들이 나를 더 곧이 서라고 다그쳤다. 천천히 해라, 쉬어가라는 타인의 진심 어린 위로도 와닿지 않을 만큼, 나는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에 미쳐 있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내 모습을 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나'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부족할 땐 몸이 닳아져라 일하고, 그리고 또 쉴 틈 없이 무언가를 계속하는. 끊임없이 날 갈아 넣고, 죽여가는 과정을 사람들은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박수를 쳤다. 어쩌면 난 타인의 칭찬에 목이 마른 사람, 타인의 칭찬 없이는 인생이 바르지 않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남들이 말하는 목소리나, 남들이 바라보는 '나'란 사람의 이미지는 그저 타인의 생각과 시선일 뿐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나의 이미지라고 해도, 그걸 일그러뜨리고 살아간다고 해도, 그 모습을 보고 타인들이 안타깝다며 혀를 내두른다고 해도, 그게 내가 선택한 길, 나의 인생인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어찌 남들이 바라는 호흡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힘들다고, 아프다고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은 것이다.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간 다시 일어나겠지'라는 말할 테니까. 그 정도만이라도 충분하다.
너무 많은 일에 둘러싸여 있어, 앞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이 있다. 희망도, 꿈도 다 부질없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좌절의 늪으로 몰아넣을 테다. 그래도 괜찮다.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절망 속에 몸을 뉘어보자. 그게 아주 길어도 상관없다. 며칠,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 나를 아주 짙은 우울의 강가로 밀어 넣어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된다고 해도. 그만큼 자신이 병들어 있었음을, 많이 지쳐 있었음을 깨닫게 되기까지 천천히 자신을 기다려보는 것이다. 그 끝이 없을 것 같은 절망의 시기가 끝을 보이게 된다면, 그때는 깨닫게 될 것이다. 나에게도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대체 무엇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 모르겠다. 반드시 최선을 다해 살아갈 필요는 없었다. 삶에 있어서 진리라는 것은, 그토록 쉽게, 어린 나이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서른 한 살인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이 든 어른들도 인생의 참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때 왜 나는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인생을 살았을까. 왜 한 가지에만 몰두하고, 영혼을 갈아 넣는 일만이 진리라고 생각했을까.
인생은 유한하지만, 짧지만도 않다.
우리가 백세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청년들은 이제 겨우 인생의 30%밖에 살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겪어 보지 못한 것을 속단한 것 뿐이다.
아주 오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유한한 열정도 닳아지지 않도록 소중히 아껴 써야 한다.
인생이 유한하다고 여기는 만큼, 우리의 정신력과 체력과 건강도 무한하지 않으니까.
오래, 아주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지금 내가 추구하는 열정이라는 행복이 얼마큼 닳아져 있는지를 보자.
천천히 가도 괜찮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유한하지만 긴 나의 인생을 아주 잘게 곱씹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꼭꼭 씹어 먹자. 이 순간엔 어떤 단맛이 있고, 어떤 쓴맛이 있고, 또 어떤 행복한 맛이 있는지를.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또 그 시간을 누리는 나의 동력이 깎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렇게 천천히 인생을 누려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