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병행하며 1인 출판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매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우선 책을 내는 것'에 먼저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ISBN 코드번호를 발급받고 책 디자인을 신경 쓰고,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오탈자를 자체적으로 검열하면서 오직 출판될 결과물의 완성도에 대해서만 온 집중을 다했다. 내가 정성 들여 한 권의 책을 만들면 세상이 그 책을 알아봐 줄 거라고 자신했던 것이다.
원래 처음부터 책을 출판할 생각은 없었다. 운 좋게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게 되어 꾸준히 1일 1글쓰기를 했고, 인스타그램에도 글작가(당시 팔로워 1,000명)로 활동하며 그야말로 활발한 취미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글쓰기는 나에게 고급진 취미 정도였다.
내가 처음으로 출판을 고민하게 되었던 때는,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출판 프로모션을 열었을 때였다. 그때 처음 마주한 POD 출판 (Print on Demand, 주문형 인쇄 시스템)은 나에게는 엄청난 기회처럼 느껴졌다. 등단을 하기 위해 발버둥 쳐왔던 난데, 아무런 부담 없이 브런치 작가의 혜택으로 책을 낼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브런치의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는 모토가, 오늘날 1인 출판 시장을 더 넓게 퍼뜨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이것을 계기로 출판업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호기심에 시작해본 POD 출판은 나에게 더 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때 당시 내 나이는 이십 대 중후반으로 어렸으니, 누군가 '작가님'이라고 불리는 것 자체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여태까지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공을 들였던가. 좋은 기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그걸 계기로 책까지 썼으니 당시에 자존감 혹은 자만심이 얼마나 하늘을 찔렀겠는가. 호기롭게 출판사업자를 냈고, 열심히 공들여 책을 썼다. 그렇게 첫 책이 세상에 나왔고, 거짓말 같게도 그 책이 잘됐다.
사업가는 꾸준히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작가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었으니, 매일 하루에 1편의 글을 쓴다고 해도, 그다지 퀄리티가 있는 글이 나올 수가 없었을 테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맞는지 하루에도 수없이 들쭉날쭉하는 마음을 삼키며, 다른 한 편으로는 '출판'과 '작가'에 대한 또 다른 도주로를 형성해두고 있었다. 수틀리면 바로 사업이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나를 아주 깊은 우울의 곁으로 끌어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유명한 작가들을 보면 대작의 작품을 하나 써 두고는, 10년간 신간을 발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모습들만 보고는, '아, 작가는 천천히 작품을 내고 괜찮구나'라고 생각했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신인작가라면 더더욱 시장의 흐름을 공부하고, 개인의 감정이 아닌 대중의 감정을 꿰뚫어 볼 줄 알아야 하며, 단 한 명의 독자가 아닌 꽤 많은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만의 작품,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은, 신인작가에서 인기 작가로 탈바꿈되었을 때 그때 해도 됐다. 왜, 앤디 워홀의 명언 중,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다. 오히려 사업의 마인드보다는 작가의 마인드가 더 짙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당시에 나는 작품 하나에 제대로 몰두할 수 없었고, 덕분에 출판도 분기마다 한 번씩 할 여력도 없었다. 그나마 하루에 글 한편씩을 꾸준히 쓰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출근과 퇴근의 반복 속에서 틀에 박힌 주제의 글만 써지고 말았다. 텅 빈 공감과 위로의 글 따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정작 나야말로 그런 글들을 쓰고 있었다. 매일 다른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래도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던 '1일 1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꾸역꾸역 글을 써댔다. 그러니 쓴 글의 주제들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3권의 출판, 방식이 잘못된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3권의 책을 출판했지만, 어쩐 일인지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좋지는 못했다. 첫 책이 너무나도 잘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종합 베스트셀러 top 100 위권에 머물러있던 책은 어느 날부턴가 순위권 밖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글, 신간을 계획하기보다는, 점점 떨어져 가는 책 매출과 베스트셀러 순위에만 집착하기 시작했다. 대체 내 책이 뭐가 문제지? 마케팅이 잘못됐나? 돈을 더 써서 홍보를 해야만 했나? 사실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작품, 도서도 결국에는 하나의 상품이었다. 책을 통해 공감이나 위로, 혹은 정보나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상품인 셈이다. 그러나 상품은 다른 여타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유행을 탄다. 유행을 탄다는 것이, 겉표지나 포장재의 촌스러움과 세련됨의 유무를 떠나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한 요소겠지만) 책의 내용에 담긴 작가의 가치관이나 신제품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관심도 유행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연도나 날짜도 그중 하나일 테다. 당장 나라도 그렇다. 오래전 출간된 책보다는, 최근에 출간된 책을 더 선호할 테니 말이다.
'내 책이 왜 팔리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 때는, 조급함을 들기보다는 혜안을 택하길.
책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찾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주변의 출판사들을 보는 것이다. 출판업이 아니라 어떤 다른 사업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잘 만들어진 상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잘 팔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물며 잘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할지라도, 그 상품의 불편사항을 개선한 더 좋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잘 팔리던 도서가 팔리지 않게 된다면, 주변의 출판사들은 어떻게 하는지 찾아본다. 표지를 갈아버린다던지, 내용을 추가해 개정판으로 낸다던지, 아니면 마케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면서 상품이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찾는 것이다. '왜 내 책이 팔리지 않지?', '왜 사람들이 내 책을 찾지 않지?' 이런 조급한 생각을 하기 전에, '왜 내 책이 시장에서 도태되어 가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 푼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울며 떼쓰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어린아이였을 때나 통했을 일이다. 문제점을 찾았다면, 왜 문제인지를 분석해보자. 조급한 생각이 들 때는, 그 마음을 차분하게 누르고 문제점을 개선할 동력으로 쓰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만져봐야만, 직접 피부로 시장의 생리를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