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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Oct 21. 2022

작가에서 출판 사업가로


나만의 신념을 담은 책
나는 그런 작가가 될 거야.

 한때 나는 남모를 나만의 감성에 취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잘 팔리는 책, 자본주의 시장에 굴복해버린 상품 같은 글은 쓰지 않겠다고. 어릴 적부터 소설을 쓰고 싶어 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류 보다는 등단한 작품이나 순수문학 쪽에 눈길이 갔던 것도 그런 가치관 때문이었으리라. 매년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했다가 떨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내가 삶의 연륜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내 생각과 마음이 어린것에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 또래의 친구가 등단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괜히 마음 한 편이 쓰려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내가 정말 연륜이 부족해서 작가가 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의구심이 지금의 출판사를 차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작가에 대한 환상'에 젖어, 출판이라는 사업을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했다. 인디자인 편집 프로그램과 포토샵에 능했던 나는 비교적 쉽게 책 만드는 법을 배웠고, 가벼운 생각으로 출판시장에 책을 내놓았다. 그땐 책을 내놓은 것만으로도 모든 게 다 끝이 난 줄만 알았다. 내 이름으로 된 책, 그 말만으로도 얼마나 찬란하고 빛이 나는가. 내 또래 주변 지인들은 모두 나를 멋진 사람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고, 나는 나날이 어깨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유명한 작가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 있었다.



아웃소싱의 늪

 물류창고에 책 재고가 쌓이고, 물류비가 매달 들어가면서 나는 마음이 점차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직장을 다니면서 출판일을 하고 있던 터라, 나의 월급에서 조금씩 그 물류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물류비 부담으로 책을 다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마케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홍보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던 것이, 공부에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책을 읽고 강연을 끊고, 마케팅으로 성공했다는 이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은 공통적으로 꾸준히, 매일, 성실하게 콘텐츠를 내면 된다고 했다. 얕은 지식의 무서움.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 중에도 나는 나만의 감성, 나만의 예술에 취해 있었다. 세상이 나의 감성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가 직접 마케팅을 하지 않고, 아웃소싱을 할 사람을 찾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이것저것 마케팅을 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직접 일을 하지 않았으니, 내 곁에는 수많은 프리랜서와 대행사가 스쳐 지나갔다. 월급을 벌어 광고비에 지출했고, 나는 늘 가난했다. 어떤 날은 마케팅이 성공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이도 저도 되지 않기도 했다. 돈만 쏟아붓는 그런 굴레 속에도 나는 나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신은 어쩌면 그런 나를 꾸짖고 싶었던 걸까.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가 경영악화로 폐업을 하던 날, 나는 말끔하게 정리해고되었다. 이제는 아웃소싱으로 마케팅을 맡길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마케팅을 하기 위해 여러 웹사이트를 전전했다. 동네서점 영업을 뛰며 어떻게든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 위해 애를 썼다. 정말 좋은 기회가 오기도 했지만, 고정수입을 받던 때와 비교를 하면 그때의 나에겐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도 소소하게 광고비는 새어나가고 있었다. 자취방 월세도 내지 못해 속앓이 하면서도, '내일은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버티면 된다고 했으니까. 꾸준히, 매일, 성실하게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고 했으니까. 나는 순수하게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절실함 만으로 꿈이 이뤄질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아마 이 세상엔 전부 성공한 사람들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되뇌며, 점점 좌절의 늪으로 빠졌다.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없으니 번아웃이 온 것이다. 번아웃은 우울증으로 번졌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게, 고귀하게 죽을 수 있을까. 그래도 흉측하게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밤 울다 지쳐 쓰러졌고, 다음날 아침이 밝지 않기를 바랐다.



안정적인 수입을 줄게. 단 조건이 있어.
이제 앞으로 출판은 할 수 없어.

 그러나 신은 또 나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다. 취업시장이 어두운 때, 나는 아주 좋은 기회로 다시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직장에서는 조건이 있었다. "이 일을 할 때는 출판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울증은 일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고정수입이 생겼고, 멀리 하고 싶었던 글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다시 펜을 들게 되자, 이제는 출판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웃소싱으로 들어가던 불필요한 지출도 빼고, 어떻게 하면 마케팅을 똑똑하게 할 수 있는지 공부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신념 따위 내려놓은, 내가 원해서 쓰는 글이 아닌 사람들이 찾는 글을 쓰자고 말이다. 베일에 가려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보다, 오히려 솔직하게 터놓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글. 사막 같은 글에서도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책을 말이다.


 글을 꾸준히 쓰면서 사업 밑천을 벌기 위해 소비를 줄였다. 월급의 80% 이상은 줄였다. 돈이 생기면 무조건 저축했고, 모은 돈을 불릴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았다. 재테크 공부도 시작했다. 이제 돈 때문에 고생하는 일 없게 말이다.



잘 팔리는 감성을 쓰자.
작가에서 사업가로.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와 돈을 벌어야 하는 사업가 사이에는 그 어떤 접점도 없었다. 내가 처음 출판사를 차릴 당시, 그때의 나는 철저히 작가의 마인드였다. 작가의 가치관으로 사업은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럼 출판사를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책을 선호하고, 찾을까. 소설 분야에서 어떤 소설이 인기가 있을까. 어떤 콘텐츠가 끌릴까. 그런 중에도 작가로서의 나와 타협점을 찾는다. 무조건 나만의 감성을 쓰고, 타인이 좋아해 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버린다. 감성은 지키되, 그럼 잘 팔리는 감성으로 브랜딩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작가와 사업가 사이의 절충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브랜딩은 생각보다 어렵다.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변화 없이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출판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5년의 출판과정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이제는 작가보다는 출판사의 대표로서, 어떻게 하면 나의 작품을 사업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을지, 초반을 다지는 것.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앞으로 꾸며나갈 나의 콘셉트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칠 테니까. 내가 생각한 고집과 신념을 내려놓을 것,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 것. 그것이 출판사를 이끌어가는 마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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