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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26. 2023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기까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영겁의 증오 끝에, 결국엔 날 끌어안고 말겠지. 온몸이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나를, 왜 그동안 아파하기만 했느냐며 나 자신을 연민하겠지. 거기서 사랑이 피어오르겠지. 그러겠지.

 한때 나는 내가 삶을 잘 안다고 과신했던 적이 있었어. 그 무서울 정도로 맹렬한 자신감은, 어느 맹수의 눈빛처럼 강렬하기도, 붉은 장미의 가시처럼 도도하기도 했지. 누구보다도 생을 가장 잘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했던 내가, 어느 날 문득 방향을 잃어버렸어. 확신에 들어찬 선택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을 때 즈음이야.

 세상사람들 중 누구 하나도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었어. 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 왔거든. 모두가 하나같이 '너처럼 열심히 살다가 골병이 들겠다'고 했어. 나는 그 말을 비웃어 넘겨버렸지. 마치 나는 평생 녹슬지 않을 것처럼 말이야.

 모두가 웃어야 한다고 했지. 사람들은 내가 흘러내려가는 중에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그런 말들을 내뱉었어. 웃어야 한다고, 그저 웃어야 한다고. 나는 웃는 법을 잃어버렸는데, 흘러버린 몸을 굳힐 힘도, 그런 희망 따위도 없었는걸. 하지만 타인들이라고 해서 내 생을 어떻게 일으켜 세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그들 중에는 진심으로 미어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나를 안쓰럽게 내려다보기도 했어. 그래도 그들은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시름시름 앓아 죽어가던 중에도 말이야.

 그 말이 딱 정확한 것 같아. 이상하게 그런 순간은 있지, 내가 세상사람들의 발바닥 밑에 밟혀있는 기분이었어. 일어나려고 해도 세상은 자꾸만 날 밟고, 밟고, 또 밟았지. 모든 사람들은 나의 위에 있었어. 그 위에서 안타까운 눈빛이 담긴 연민과 우월감과 가식을 늘어놓곤 했어. 나는 그들이 내뱉은 감정의 말조각들을 흡수했어. 그 말들이 무척이나 잦아져, 내게 미비한 영향조차 미치지 않게 될 때까지 말이야.

 타인들은 어쩌면 나에게 저런 따뜻한 위로의 말을 베풀 수 있을까? 사랑은 있는 자만이 전할 수 있다고 하잖아. 나는 이상하게, 사랑의 말들을 받아먹으면 받아먹을수록 공허해지곤 했어. 영화나 책, 시집에서조차 사랑을 노래하는데, 그 노래를 들어도 이상하게 가슴은 텅 비어있는 것만 같았지. 아무리 허기진 들개처럼 사랑의 고깃덩이를 집어삼켜도 배는 부르지 않았어.

 그러니까, 나를 더 미워할 수밖에 없었어. 내 영혼은 말라서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사랑을 먹어도 커지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점점 말라 결국엔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어. 그토록 자신감에 들어차있던 내 삶이 말이야, 하루아침에 사막처럼 바싹 메말라버리고 말았던 거야.

 나는 끝까지 나 자신을 학대했어. 못마땅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했지. 자신을 향한 증오는 오히려 고요한 바다 같았어. 나는 바다에 잠겨 죽을 것만 같았고. 새벽 내 차갑게 뜬 두 눈은 천장을 향해 있었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 가슴에 뜨거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마침내 영혼이 죽어버렸다고 느꼈어. 그러니까 있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었어.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해보려고 해. 타인과의 비교 같은 거, 삶이 대단하다고 우쭐거리는 거 말고. 정말 나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들 말이야. 꿈같은 거 목표 같은 거 다 집어치우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

 그럼 나, 나 자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날 미워한 죄, 증오한 죄, 내 영혼을 벼랑 끝까지 내몰아 뛰어내리라고 부추긴 죄.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영겁의 증오 끝에, 결국엔 날 끌어안고 말겠지. 온몸이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나를, 왜 그동안 아파하기만 했느냐며 나 자신을 연민하겠지. 거기서 사랑이 피어오르겠지.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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