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Mar 01. 2023

밤편지


 수많은 날들을 노래했다. 영원할 것 같던 노래, 그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간 어떤 이의 목소리는 결국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떠나간 사람에 대해 떠들어대기에 바빴고, 나는 그 소문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떠나간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의 영혼은 사람들 주변을 바람처럼 휘감았다. 그는 죽어 겨울바람이 되었고, 나는 그 사이 앙상한 마른 가지가 되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새로운 푸른 싹이 돋아날까. 그건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어두운 외로움이 짙게 깔린 새벽, 흰 편지를 책상 위에 곱게 편 채, 한참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펜의 잉크는 서서히 흰 편지에 스며들었건만, 나는 제대로 된 글자 하나를 쓰지 못했다. 온 세월, 그에게 바쳐 살아왔던 날들이 아름답고 찬란해서, 이 작은 종이에 새겨 넣을 수 없었다. 창밖,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추운 겨울바람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카디건을 끌어다 목 주변을 감쌌다.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찬 밤공기가, 마치 영혼이 된 그의 온도인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왔다.

 당신이 왔다.


 당신임을 확신하고 있다가 나는 이내 체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겨울바람이 당신이라면 나는 무척 울고 싶을 것 같았다.

 나의 삶과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모든 게 늘 확실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당신의 죽음에 대해 너무나도 또렷하게 확신을 내렸다. 당신이 죽었다고, 죽어 없어졌다고, 사라져 버렸다고. 그러나 나는 당신과의 영원한 이별을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더 편지를 쓸 수 없는 것이겠지만.

 결국 빈 편지지에 검은 잉크 얼룩만을 남긴 채, 펜을 내려놓았다. 어쩐지 가슴 한 편이 시큰거려 제대로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쥔 채 서서히 책상에 기댔다. 당신이 죽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지금도 여전히 창밖에서 들려오는 겨울바람 소리가 구멍 난 내 가슴 틈으로 새어 든다. 당신을 원망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밤이 깊어지면 자꾸만 당신을 원망하고 싶어 진다. 원망은 속절없는 그리움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당신이 왔다.

 당신이 왔다.

 당신이 올까?


 이제는 당신의 부재를 확신해야만 한다고, 이 추운 겨울바람의 메시지는 그렇게 내 가슴을 애잔하게 울리고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