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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r 22. 2023

행복해지기 위해 놓아야 할 것들


 이런 난리 속에서도 자연은 흘러가고, 바람은 불고, 햇살은 쏟아진다. 모두가 그렇듯, 시간과 손을 맞잡고 흘러가는 자연에서 우리들의 인생도 조금씩 틀리고, 또 달라져가며 작용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타인의 영혼을 잡아먹기도 하고, 또는 잡아먹히기도 하면서 그것을 에둘러 '성장'이라고 포장하며 지낸다.

 인생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행복 곁에 지낼지, 불행 속에 갇힐지 결정할 수 있다. 행복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쥐고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내가 행복하기로 선택한다고 해서 감정 없이 지낼 수도 없고, 늘 웃을 수만도 없으며, 때론 우울해있기도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의 탓은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자연 속에 녹아들어 사는 인생이라면 당연한 일일테다.

 한때 나는 자꾸만 불행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자신을 탓하곤 했다. '난 왜 이렇게 우울할까?', '왜 늘 안될 거라고만 생각할까?' 이 말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타인과의 삶을 비교하고 있다는 증거가 담겨있기도 한다. '난 왜 이렇게 (남들보다) 우울할까?', '왜 늘 (남들과 다르게) 안될 거라고만 생각할까?'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때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좋지 않은 일이 들이닥칠 때는 막연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들 말이다. 나는 늘 계획적이어서, 늘 불안해해서, 항상 무언가를 대비하면서도 초조해했다. 혹시라도 이런 방어책들이 다 허무하게 무너져버릴까 봐 불안해했다.

 자연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낙천적으로 사는 타인과의 인생을 비교하며 나를 깎아내리라는 뜻은 아니다. 지구의 뒤틀림과 거대한 움직임, 우주의 자연적인 현상들로 인해 시간이 흐르고 자연이 변화하듯, 때론 작고 하찮은 인간이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리적인 것, 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그게 자신의 힘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을 어떻게든 바꿔보려 애를 쓰는 것은, 거기에 초조함을 느끼고 불안해한다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삶에도 큰 해악이 될 테다. 그러한 초조함들이, 불안감들이 나를 도태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의 불안감, 그것을 떨쳐낼 수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한 용기가, 내가 자연 속에 녹아 흘러갈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우리가 비로소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나 자신마저 놓아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욕심에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나를 따로 두고 바라보는 연습. 내가 맞닥뜨리게 될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자연의 순리를 바꾸기 위해 애를 쓰고 불안해하지 않을 연습. 꾸준히, 지속적으로 그리고 천천히 곱씹는 연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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