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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pr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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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아주 멋진 노래를 만나게 되면, 나는 그 가수의 전곡을 다 들어본다. 그의 분위기와 감성과 가사들을 머릿속에 하나 둘 새겨본다. 모두 한결같은 음악세계를 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 '한결같음'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영혼을 깎아내 왔을지 가늠해 본다. 차마 그 열정의 시간을 헤아리기 힘들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진득하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한 톤의 색깔로 꾸준히 표현해 내는 일이다. 나는 가끔 내가 글을 쓰거나 영상 작업을 할 때마다 나의 결이 무엇인지를 상상해 보곤 한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나는 어떤 형태일까? 나는 어떤 색깔로 보일까? 내가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어떤 또렷한 '색깔'로 정의하기 어렵듯, 나의 형태도 단순한 색깔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예술가의 네임, 그 자체였다. 나도 '김희영'이라는 독자적인 색깔로 세상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겪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조금씩은 내 색깔을 가늠해볼 수도 있겠다.

 정신없이 걸어가다 보면, 내가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내가 걸어왔던 모습들을 되짚어보고 있다. 최근 들어 생각한 것들과 재개해보고 싶은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을 떠올린다. 나의 시간과 하루들을 아주 소중히 아껴 먹으면서 나를 키워나가고 싶다고 다짐한다. 아주 살짝 다른 색깔을 칠하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것만 같아서. '내가 잘하고 있나?' 나에게 또다시 물어본다.

 내가 칠하고 싶은 풍경을 생각하면, 자꾸만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내가 칠하고 싶은 세상은 오롯한 나의 의지와 희망이므로. 일관된 행복감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거친 자유의지보다 되려 안온한 절제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때론 정말 하고 싶은 꿈도 참아보고, 호기심과 열망도 접어둔 채 나에게서 멀어져도 본다. 사실 나 자신은 단 하나의 자아라기보다는, 마치 매시간마다 새로운 자아가 탄생되고 또 죽는 것 같다. 그 수많은 생각이 응집된 영혼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변형된다. 열정에 사로잡혔던 마음이 금세 식어버리기도 하고, 또는 죽어 없어지기도 하고, 또는 더 활활 불타오르기도 한다. 변죽이 심한, 내일의 자아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서 더 멀리 나에게서 멀어져 보고, 내가 원하는 배경이 무엇인지를 나의 스케치된 세상을 떠올려본다. 어차피 앞으로 칠할 수 있는 시간은 차고 넘치므로.

 하고 싶은 수많은 꿈과 열정들을 하루아침에 이루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잠잠히 죽어있을 이유도 없다. 꾸준하고 뭉근하게 열을 내면서, 지치지 않을 정도로 가끔 목을 축이면서 부지런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어느 한 예술가들의 고유한 풍경처럼, 나 또한 그런 과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생에 완성된 그림은 없다. 미완의 풍경으로 조금씩 붓칠 해가며 칠해나가는 과정 속에, 어렴풋이 '완성'을 떠올릴 뿐이다. 감히 미래를 완성형으로 가늠조차 할 수 없겠지만, 때론 부서 없어지는 자아들의 고귀한 죽음 아래 '완성'을 점쳐본다. 왠지, 이 열정 많은 이의 삶의 끝은 끝없이 찬란하고 절절한 성공이 자리하고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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