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Apr 19. 2024

지는 동백을 애도하며

 너에 대한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건, 다른 의미로 참 좋은 일이다. 나는 네가 그리울 때마다 활자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 넣을 테고, 그만큼 너에게 닿기 위해 걸어가는 걸음도 더디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차마 잊을 수 없어 못내 마음을 덮는 나 자신이 야속하고, 다가가지 못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현실 앞에 마음을 굽혀야만 한다는 한마디로 회피하는 중이다. 결국은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끝을 볼 수 있다는 알량한 핑계는 널 영원히 만나지 않음을 택했다. 아니, 어쩌면 우린 끝이 아니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은 때가 올까. 사실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넌 전처럼 날 냉랭하게 대할 거라는 것이다.

 차라리 서로의 마음을 몰랐던 때가 좋았을까? 마치 미래를 미리 보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기분이다.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부디 나를 바라보지 마라고 할까, 말을 걸지 말라고 할까, 아님 입을 굳게 다문 채 절대 사랑하지 않겠다고 굳세게 다짐하게 될까. 나는 우리의 사랑 위에 동백꽃을 올려놓으며 애도를 표한다. 조금씩 생기를 잃으며 지고 있는 꽃. 생각해 보면 참 길게도 왔다. 겨울꽃이 봄까지 끈질기게 살아있는 걸 보면.

  왜 자꾸 헷갈리게 만드냐는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던 건,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마냥 어린애처럼 좋은 마음만 좇아가면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결국 너에겐 좋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너의 그 질문이 나에게는 확실한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너에게 온전히 기댈까 말까, 너에게 나의 생을 바칠까 말까 하는 이 커다란 흔들림을 더는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한 생을 누군가에게 바친다는 것은, 순수한 의미로 기댄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의미로는 책임을 전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는 게 가볍게 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의 생을 공유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용기가 있어야만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탄생으로 주어진 생이라는 운명은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타인에게는 짐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걸, 그걸 알고 나니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나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악이 될 수 있으며, 또는 지나가는 바람이 될 수도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너의 탓이 아니었다. 모두 다 내가 못난 탓이다.

 그리운 마음을 펼친다면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끝도 없이 펼쳐져 온 우주를 감싸고도 남게 될까. 눈에 형용하지 않는 그리움들이 유리조각처럼 반짝거려 마음을 옥죈다. 가시 없는 선인장을 바라보며,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껏 가시를 돋쳐, 절대 내 속을 파헤쳐보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은 것을 들키고, 또 너무 많이 슬퍼해서, 이제는 시들어버린 인연에 대한 애도조차 할 기력이 없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수장시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보내야 할까. 그 눈물의 수위를 조절하는 이는 누구일까. 덩그러니 남게 되는 이는 누가 될까.

 그리운 이를 평생 보지 못할지도 몰라 두렵고, 모든 걸 놓치게 될 줄 알면서도 잡을 수 없는 심정은 참으로 참혹하다. 그래도 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하련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보다 더 확실하고, 그 한 마디 내뱉음이 외려 내 마음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