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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04. 2024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차분히 내린 밤안개 사이로 울적해진 마음은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내가 꿈꿨던 인생에 대하여 지도처럼 펼쳐보아도 마음은 무언가에 짓눌려온 듯 푸른 멍으로 가득 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떻게 난간을 헤쳐나가야 할지 모른 채 그 푸르고 시린 밤하늘에 얼굴을 파묻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차고 넘쳤고, 오갈 데 없는 나의 영혼은 맨 길바닥에 발가벗긴 채로 버려졌다. 사랑하는 마음은 그렇게 제멋대로 밖을 쏘다녔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밤 이불을 덮고 쓰린 속을 쓸어내렸다. 몹시도 추운 밤이었다.

 바람이 되어 이곳저곳을 쏘다녀도, 누군가의 마음에 정착할 수 없었다. 다양한 유형의 사랑은 나에게 꼭 들어맞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를 싫어했고, 또 누군가는 나를 열렬히 사랑해 주었으며, 또는 무관심하기도 했다. 눈물을 닦을 기력도, 온 힘을 다해 낯선 세상과 부딪힐 용기도 없었다. 차츰 쓰러져가기 시작한 마음은 차가운 안개에 짓눌려 밤을 보냈다.

 오히려 동틀무렵의 기온이 더 차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새로운 삶을 펼쳐나갈 아침에, 나의 영혼은 손으로 온몸을 비비며 일으킬 것이다. 그럼 나는 이른 새벽에 즐거운 듯 춤을 출 수 있을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꿈을 그리며 그저 행복하게 미소 지을 수 있을까? 어쩌면 차가운 안개에 온 마음이 짓눌려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밤새 몸살을 앓고, 그리운 이를 떠올렸다가, 혹은 가엾은 나의 인생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가, 그렇게 얇게 짓눌려 죽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일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한때는 누군가 나의 손목을 잡고 함께 도망쳐주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던, 텅 빈 내 마음이 따뜻한 무언가로 가득 차서 뜨거워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서의 도피가 삶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번 도망치게 되면, 나는 평생을 배회하며 살아갈 것만 같았다. 다시는 현재의 나로 되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를 구원해 주었다고 생각한 타인의 손길에만 의존하다, 평생 나 자신을 증오하며 살아갈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사랑만을 갈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너무도 춥고 외로운 일이었다.

 한없이 타인에게 사랑을 내어주고, 정작 나 자신은 버려둔 생. 온몸에 멍이 든 영혼이 춥고 어두운 밤하늘을 끌어안고 자는 새벽. 나는 어쩌면 누구보다도 절실히 사랑을 원했지만, 나의 생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야만 했다.

 나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부인하며 쏟아낸 눈물이 마르는 날, 나는 말라붙은 눈곱을 떼며 한껏 높게 기지개를 켜고 싶다. 차가운 새벽이 지나 찬란하고 맑은 아침 햇살이 쏟아질 때, 두 다리를 뻗어 기꺼이 춤을 출 테다. 밤새 안개에 젖은 몸을 볕에 말리며, 푸르게 물든 입술에 생기를 적시며, 나는 비로소 모든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내가 진정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온전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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