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파동이 없어.
마치 컴컴한 심해처럼 말이야.
칠흑 같은 어둠 안에 네가 있구나.
넌 빛없인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오직 어둠만이 빛을 흡수할 수 있지.
이제 네 이름은 현(玄)이다.
현이 숨을 내뱉으며 눈을 번쩍 떴다. 마치 잠수를 하다 물 밖으로 숨을 내뱉는 것처럼 내쉬었다. 이부자리에 누운 채, 헉헉 거리며 흰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현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어쩐지 선명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현은 고개를 돌려 머리맡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지난밤 얼마나 눈이 내렸는지 모른다. 커튼을 치지 않았는데 창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현은 누운 채로 팔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 보일러로 후텁지근했던 방에 찬기운이 밀려들었다. 더운 듯했는데, 개운한 기분이 들어 현의 잠도 단숨에 달아났다. 현은 습관적으로 눈을 비볐다. 눈앞이 희뿌연 게, 마치 눈곱이 끼었거나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만 같았다.
*
현이 태어나던 날에 세상은 온통 눈바다였다.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배를 움켜쥔 현의 어머니는 다급하게 택시를 붙잡았다. 뱃속의 아이는 자궁 속을 쥐어짜듯 요동치고 있었고, 아이의 발길질에 어머니는 땀과 눈물을 비 오듯 쏟아내고 있었다. 산모의 위급한 상황을 알아본 택시기사는, 바로 근처 산부인과로 산모를 데려갔다. 양수로 젖은 치마가 겨울바람에 차갑게 식어, 진통이 더 아리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제발, 살려주세요, 선생님…….
엄청난 고통에 현의 어머니는 되려 비명을 삼켰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을 참아야만 고통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밑이 빠질 것만 같았다. 간호사는 현의 어머니가 정신을 잃으려 할 때마다 흔들어 깨웠다. 귀에서는 간약한 이명이 들려왔다.
산모분! 숨 쉬세요, 숨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아득해지기 시작하고, 현의 어머니는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이렇게 애를 낳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현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은 현기증이 이는 것처럼 노랬다가, 보랏빛이 되었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힘을 주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 줄도 몰랐다. 진통은 몇 시간째 이어졌다. 그렇게 현의 어머니는, 주변에 가족 없이 홀로 힘겹게 아이를 출산했다.
열 달도 차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일곱 달 만에 갑자기 나올 수가 있는 건지, 현의 어머니는 문득 두려워졌다. 혹여 내가 뭔가를 잘못 먹은 건 아닌지, 몸을 혹사해서 그런 건지, 그래서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현의 어머니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마취가 아직 덜 깨어 감각이 없는 다리엔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들어가지 않은 배는, 마치 아직도 뱃속에 아이가 들어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의 어머니는 왠지 울컥, 하고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현의 출산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뒤늦게 일을 마치고 병원에 왔다. 현의 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현의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 먼저 담당 의료진과 상담을 했다. 의사는 익숙한 듯 현의 아버지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직은 소화기관이 미성숙해서 분유나 모유를 먹기 어렵구요. 우선 정맥주사를 좀 맞으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가 좀 더 안정되면 코나 입을 통해 튜브를 삽입해서 모유나 분유를 먹일 수 있구요. 나중에 젖병을 빨 수 있을 만큼 커지면 그때 직접 먹게 되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아내는요? 아내는 무사한가요?
현의 아버지는 다급하게 물었다.
현의 아버지는 현의 어머니가 있는 병실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매일같이 정시에 퇴근하던 그였지만, 연말즈음이면 이상하게 일이 몰리곤 했다. 그것이 아내가 출산을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게 될 줄은 몰랐다. 현의 아버지는 터질 것 같이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병실 문을 열었다.
그때 현의 어머니는 병실 배드에 누운 채 흐느끼고 있었다. 병실 문 여는 소리와 함께 현의 어머니가 문쪽을 돌아보았다. 온몸에는 출산을 하느라 열이 피어 빨갛게 달아 있었고,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빨개 있었다.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된 채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현의 아버지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현의 어머니를 안았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곁에 있지 못했단 죄책감에 차마 고생했단 말을 내뱉지 못했다. 현의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현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애기 봤어요? 아이 얼굴만 한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는데…….
떨리는 현의 어머니 목소리에 아버지는 숨을 고르게 쉬었다.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어머니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그런 말이 있었다. 칠삭둥이는 몸이 허약해 자주 아프다는 말.
현의 부모님은 조리원에서 퇴원 후,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됐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이름을 제대로 맡겨서 짓고 싶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가장 용하다는 작명소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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