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지만, 차가운 현실 앞에 열정은 연약했다
코로나19로 세상은 시끌벅적했다.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해도, 회사의 경영악화는 나완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청년이 길거리로 나갔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는 얼어붙었다.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던 권고사직을 경험한 후, 나는 한동안 실업급여로 연명하며 살았다. 부모님께는 회사에서 잘린 사실을 말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월급으로 여기며, 꼬박꼬박 용돈을 부쳐드렸다. 월세를 내고, 용돈을 부쳐드리니 이제 점점 실업급여 수급이 끝나는 날만이 보였다. 5년간 바지런히 일만 한 덕에 실업급여는 꽤 긴 시간 동안 수급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고, 카페 알바라도 해보기 위해 자리를 알아봤었다. 하지만 그땐 정말 거짓말같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공고 따위 뜨지 않았다. 나는 그때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내가 출판한 책을 백팩에 넣고, 동네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독립출판한 작가 김희영입니다."
그때 동네서점 사정도 여의치 않았으니, 책이 잘 나갈 리가 없었음에도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 나를 소개하는 일, 책을 파는 일. 그렇게 겨우 지역 센터에서 운영하는 10주짜리 단발성 강의를 구했다.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 강의 한 번에 20여만 원을 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 그 강의 하나를 준비하는 데도 엄청난 체력을 썼다. 그게 아니면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 게 살 거면, 왜 살지?'
'열심히'만 살면 다 잘 될 줄 알았다. 그토록 바랐던 PD도, 베스트셀러도. 내가 게으르지만 않고 성실하기만 하다면, 그렇게 꾸준히만 한다면 결국 다 완벽하게 해낼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취득하고 싶어 하는 욕심들로만 그득해 있었다.
그 시기 나는 힘겹게 일을 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부쳐드릴 수 있었던 실업급여도 동이 났다. 나는 더 작은 지방으로 내려가 그 이전보다 더 오래되고 낡은 원룸을 구했다. 1인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무료 사무실을 구해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더 많은 양의 카드뉴스를 만들고, 영상을 만들었다.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책을 더 잘 팔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베스트셀러에 들 수 있을까, 과거의 영광에 갇혀 허둥대는 꼴이었다. 그러다 간간이 들어오는 강의 일을 하면서, 집에 가면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끼니는 주로 해 먹었는데, 집에서 받은 쌀과 반찬으로 겨우 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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