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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J Nov 15. 2015

두부 가게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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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미친 건 매한가지구만!"

 아침 출근길, 허겁지겁 바쁜 시간에도 김이 피어나는 길모퉁이 두부가게 앞을 지나면서 매일 거르지 않고 듣는 소리다. 그 소리에 이끌려 고개가 향하는 쪽에는 늘 러닝셔츠에 잠옷바지를 걸친 깡마른 노인네가 지팡이를 짚은 채 쌍심지 눈을 치켜뜨고 가게 앞에 앉아 있다. 평소 바삐 지나치느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번 휴일에 마누라 심부름한다고 두부가게 갔다가 그만 사단이 나버렸다.
 노인의 레퍼토리는 변함없었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미친 건 매한가지구만!"
 "네? 저요?"

 아직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른다. 매일 같이 지나치면서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회춘해서 사춘기가 다시 찾아든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반항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아직도 그 근원이 묘연하다. 노인네는 평소보다 더 섬뜩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턱 밑에 돋아난 어설픈 수염을 몇 번 쓰다듬더니 제 지팡이도 내던진 채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갑자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고는 상하좌우로 유심히 관찰하더니,

 "그래 너. 너! 너 맞잖여!"

 고함을 치더니 바로 내 멱살을 잡았다.

 "아니, 어르신 이거 왜 이러세요?! 일단 이거 놓고 말씀하시죠? 네?"

 잡은 손을 떨쳐내려는데, 와 그 깡마른 노인네 힘이 얼마나 센지 이게 꿈쩍도 않는 거다. 괜히 민망함에 목청을 더 키웠다.

 "어르신!"
 "너 이 새끼 너 오늘 잘만난겨. 니가 감히 우리 순이를! 네 놈, 순이 데려가서 뭐한거여?! 둘이 살림이라도 차린겨?! 어서 우리 순이 데려와! 데려오라고!"
 "아니 지금 무슨……"

 불현 듯 잊고 있던 학창시절 첫사랑 '미순이 누나'가 떠올라서 잠시 흠칫 놀랐다가, 학교 졸업하고 집이 이사하면서 20년이 넘도록 얼굴 한 번 안보고 산 첫사랑 '미순이 누나'가 노인네가 나와 살림을 차렸다고 하는 '순이'와는 절대로 동일 인물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니 이게 되레 쓸데없는 오기가 생겼다.

 "어르신, 도대체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일단 이거 놓고 얘기 하시죠?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여! 너는 오늘 내 손에 아주 아작나는겨!"

 '이 노인네, 사람 말 참 잘 끊어먹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멱살 잡던 오른 주먹이 내 어깨를 내리쳤다. 신기한 건 멱살 잡는 힘은 그리 세던 양반이 주먹질은 그냥 물 주먹이었다. 그때였다.

 "아버님!"

 내 나이 즈음이나 됐을 법한 여자가 뒤늦게 그 광경을 보고 놀란 소리를 치며 가게를 뛰쳐나오더니 노인과 나를 갈라놨다.

 "아버님! 아무나 붙잡고 시비 걸고 주먹질하고 그러시면 어떡해요?! 그러다 정말 큰일 나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이 새끼 저 새끼 욕을 하면서 발길질과 주먹질을 하는데 그녀가 아니었으면 정말 일이 커질 뻔 했는지도 모른다. 노인네를 붙잡고 말리며 여자가 내게 말했다.

 "저, 다은이네 아빠 맞으시죠? 정말 죄송한데, 일단 저희 아버님 좀 진정 시키고 조금 있다가 두부 한 모 들고 그 집으로 갈게요. 우선은 눈에서 안보이게 얼른 댁에 들어가셔요."
 "오! 감사합니다!"

 조금 약삭빨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인사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집에 들어와버렸다.



2


 반시간쯤 지나, 두부 가게 집 며느리라고 인사를 하며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 한 모와 선물용 과일주스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다은이 아빠, 이거 정말 미안해서 어쩌죠? 아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아버님이 지금 좀 많이 편찮으세요. 최근에는 본인 아들도 잘 못 알아보시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정신이 오락가락 하세요……"

 두부 가게 집 며느리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만히 얘기를 듣는데 노인이 찾던 그 '순이'라는 여자는 2년 전에 급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노인의 아내였다. 아마 그가 정신을 놓기 시작한 것도 아내가 없어진 2년 전 그 때부터라 했다.

 "아버님이 아마도 어머님이 돌아가신 걸 아직도 받아들이질 못하시는 것 같아요."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아내가 죽었다고 말을 해도 수십 년을 한 몸처럼 지내온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을 도무지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미친 건 매한가지구만!'

 본인에게 아내는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는데 자꾸 산 사람을 죽었다고 하니, 이 말이 노인의 입에 붙었던 거다. 아내가 아직 살아있는 노인의 세계 속에서 노인 자신 말고는 그냥 다 미친 사람이었던 거다. 그래서 늘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미친 건 매한가지구만!'

 먹먹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머님이 아버님 몰래 살림을 차렸다 생각하고 계시더라고요. 2년 동안이나 어머님이 보이질 않으니 그러신가봐요."

 그 말을 듣는데 노인네가 귀여웠다가 이내 측은해졌다. 그 마음이 오죽했으면 제 아내를 돌려내라고 겁도 없이 한참 젊은 장정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한게다. 생각할수록 먹은 것 하나 없이 입이 썼다.
 그 이후에도 두부 가게 며느리의 노인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됐는데, 제 시아버지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제법 길게 늘어놓는 걸보니 '그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얼른 가서 저녁준비 해야겠어요. 밥 때 조금만 늦어도 아버님이 역정 내시거든요……하하. 아무튼 다은아빠, 아까 일은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마음 안 상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유야 어찌됐건 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정말 죄송해요."

 그녀는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정말 바쁜 듯이 급하게 돌아갔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시에 몸도 탁 풀리면서 노곤해졌다. 느릿느릿 씻으려 욕실에 들어서서는 옷을 벗고 거울을 보는데 아까 노인의 멱살잡이가 얼마나 억셌는지 목 아래에 온통 생채기가 나있었다. 그 상처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무 것도 모르고 욱해서 언성을 높였던 내가 창피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면서 생각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영감님의 사랑 얘기를 듣고 싶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다시 입고는 아까 두부 가게 며느리가 사온 주스 두 병을 꺼내어 들고 다시 두부 가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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