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의 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J Nov 15. 2015

삼대(三代)


"음식 아무 것도 안해도 되니깐, 뭐 사놓고 그러지 마소.

먹고싶은거 생기면 사다 먹으면 되니깐."

내가 오랜만에 고향집에 가게되면 전화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말이다.
남들은 고향집에 가는데 맛있는 거 먹고 오면 좋지 않냐 그러지만,
이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 연세가 내일모레 환갑인데다
괜히 다리도 성치 않은데,
한푼이라도 싸게 사겠다고 부리나케 아침장에 왔다갔다 할 게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먹고싶은 김치찌개 같은 것들은 이미 집에 있는 걸로도 충분히 맛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집에 내려가면
늘 그렇듯 그 날 오전에 봐온 장이 집 베란다에 놓여있다.

"엄마는 뭐 사놓고 그러지 말라니깐, 거 참."

지난 주말,
고향집에 내려갔다가 
어머니를 모시고 수년만에 외할머니댁에 다녀왔다.
어머니는 종종 왕래가 있었지만
나는 군대 마치고 찾아뵙고는 처음인지라
기대반 죄송스러움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대충 짐을 풀고 앉으니
냉장고에서 검은 봉지들이 하나씩 나와 패션쇼를 시작했다.
복숭아가 나왔다가
정체모를 생선이 나왔다가
야쿠르트가 나왔다가...
정말 하이패션의 향연이다.

"엄마는 뭐 사놓고 그러지 말라니깐, 거 참 말 안듣네."

응?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흠칫하며 고개를 드니
똑같이 생긴 모녀가 검은 봉지 몇 봉을 가운데 놓고 티격태격 실랑이중이다.
그 그림이 어찌나 재미나는지
버릇없이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점심을 먹고는
할머니를 모시고
남해 창선도를 다녀왔다.
그 수려한 경치에 넋이 나가 어영부영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더라.
부랴부랴 돌아와
찍은 사진을 넘겨 보는데
똑같이 생긴 삼대(三代)가 똑같이 딱딱한 표정으로 서있다.

나도 몰래 배시시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기(利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