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아무 것도 안해도 되니깐, 뭐 사놓고 그러지 마소.
먹고싶은거 생기면 사다 먹으면 되니깐."
내가 오랜만에 고향집에 가게되면 전화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말이다.
남들은 고향집에 가는데 맛있는 거 먹고 오면 좋지 않냐 그러지만,
이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 연세가 내일모레 환갑인데다
괜히 다리도 성치 않은데,
한푼이라도 싸게 사겠다고 부리나케 아침장에 왔다갔다 할 게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먹고싶은 김치찌개 같은 것들은 이미 집에 있는 걸로도 충분히 맛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집에 내려가면
늘 그렇듯 그 날 오전에 봐온 장이 집 베란다에 놓여있다.
"엄마는 뭐 사놓고 그러지 말라니깐, 거 참."
지난 주말,
고향집에 내려갔다가
어머니를 모시고 수년만에 외할머니댁에 다녀왔다.
어머니는 종종 왕래가 있었지만
나는 군대 마치고 찾아뵙고는 처음인지라
기대반 죄송스러움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대충 짐을 풀고 앉으니
냉장고에서 검은 봉지들이 하나씩 나와 패션쇼를 시작했다.
복숭아가 나왔다가
정체모를 생선이 나왔다가
야쿠르트가 나왔다가...
정말 하이패션의 향연이다.
"엄마는 뭐 사놓고 그러지 말라니깐, 거 참 말 안듣네."
응?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흠칫하며 고개를 드니
똑같이 생긴 모녀가 검은 봉지 몇 봉을 가운데 놓고 티격태격 실랑이중이다.
그 그림이 어찌나 재미나는지
버릇없이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점심을 먹고는
할머니를 모시고
남해 창선도를 다녀왔다.
그 수려한 경치에 넋이 나가 어영부영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더라.
부랴부랴 돌아와
찍은 사진을 넘겨 보는데
똑같이 생긴 삼대(三代)가 똑같이 딱딱한 표정으로 서있다.
나도 몰래 배시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