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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J Nov 15. 2015

어느 겨울 밤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속옷만 걸친 채 널브러져 있는 그 모습도 보기 싫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멀뚱히 서로를 마주보며
무슨 말부터 꺼낼지 긍긍하는 게 더 싫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헐레벌떡 뛰쳐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문이 열리자마자 차로 뛰어가 시동을 켰다
짜증스럽게 엔진 소리가 유난히 크다
몸에 아직 취기가 좀 남은 듯 했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았다
급히 핸들을 돌려 나가는데
마침 입구로 들어오던 한 검정색 차와 마주쳤다
최대한 조용히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산산조각 났다
물론 검정색 차주와 아는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저 이 시린 겨울밤을 조용하고 매끄럽게 벗어나고 싶었다
그 뿐이다

흘러나온 도로 위는 차대신 안개가 자욱하다
쏘아낸 상향등이 먼 시야에 미치지 못하고
대기에 부딪혀 떨어졌다
평소였으면 절대 운전대를 잡지 않았겠지만
그 어떤 원초적인 공포보다
그 어떤 강제적인 법규보다
더 커다란 무언가가 이 순간을 가속했다

어느 겨울 밤
조용한 도로 위를 차 한대가 달린다
조용하지만 시리고
꽤나 텁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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