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의 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J Sep 13. 2015

20년 만에 찾은 고향

"와아... 이 가게가 아직도 있네?"


장장 20여 년 만에 찾은

내가 나고 자란 시골마을에는 30년도 더 된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안은 늘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어린 시절 내게는 이 작은 가게가 지금의 대형마트에 필적하는 만물상이었다.


"계십니꺼?"

"하이고 덥다. 어서 오이소. 뭐 드리까?"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꽤나 육덕진 여자가 팔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부채질을 하며 가게문을 열고 나타나며 물었다.


"담배 한 갑 주이소."

"담배 뭐 드리까예?"

"디스 주이소. 저... 근데 여기 원래 그 눈 침침한 할매 가게 아니었는교?"


담배를 꺼내던 여자는 아주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어디서 오셨능교? 얼마만에 오신기라예?"

"서울서 왔심더. 한 20년 됐지예."

"오래 됐네예~ 전 주인 어무이가 가게 할 때 여기 계셨던 가베?"

"아, 그 할매 인제 여기 안계십니꺼?"

"안계시지예...가만 있어보자. 내가 이 마을 들어올 때쯤이니, 한 10년 됐나... 할매 돌아가신지."

"돌아가셨다고요? 그 할매 연세에 안 맞게 목소리도 까랑까랑하고 억수로  정정하셨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지예.  그때 뭣땜에 돌아가셨다카더라... 뭐라 캤는데 까묵으삣네."


어릴 적 이 가게 주인이던 할머니는 나를 굉장히 예뻐해 주셨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들은 할머니를 '구멍가게할매귀신'이라면서  무서워했지만,

나는 어머니 심부름도 자주 하고 그러면서 꽤 친하게 지냈었다.

무엇보다 인사를 너무 잘한다고 종종 용돈 한 푼이나 과자 한봉 쥐어주곤 하셨었다.


"카믄 할매 돌아가시고 난 후에 인수해서 지금까지 여기 계신 겁니꺼?"

"어데예, 그 할매 딸내미가 한...3년 했나? 그라고 내가 받은기라예."

"아, 그래요? 그 할매가 딸이 있었어요?"

"20년 만이면 모를라나? 그 딸내미 유명했지예. 할매가 이 구멍가게 하나로 공부시키가 대학도 보냈다 아입니꺼? 근데 그라믄 뭐합니꺼? 딸이 애인이 하나 있었는데, 애인 꽁무니 쫓아다닌다꼬 공부도 다 때려 치고, 돈은 돈대로 다 남자 갖다 주고, 개망나니처럼 살다가 지 애미 죽으니 그제야 나타난 게 그 딸년 이라예. 와서는 한 며칠 펑펑 울어 쌌더만, 지 엄마 뒤를 이어 가게를 지가 맡아서 하겠대나 뭐래나 그래가 한 3년 했지예."

"근데 왜 3년밖에 안 했대요?"

"3년도 옳게 한 줄 알아예? 만날천날 가게 문 닫아놓고 어디 싸돌아 댕기다가 밤 늦게나 술이 떡이 돼가 들어오고 그라드만, 3년째 되는 날 왠 남자 하나가 와서는 둘이 대판 싸우는 거 같더만, 글피날 둘이 나가고는 안들어왔지예."

"그럼 이 가게는 어떻게 인수 하신건데예?"

"그 딸년이 읍내 부동산에 맡긴걸 내가 인수 했지예. 부동산에서 도장 찍을 때 잠깐 얼굴 봤는데, 때깔 좋습디더. 남자가 돈을 잘 버는가 차도 크고 좋은 거 타데예?"

"아... 그랬군요. 돈 여기있습니더. 얘기 잘 들었습니더."

"어데예, 종종 놀러 오고 하이소."
"예~ 수고하이소~"

"예, 들어가이소~"


가게 앞에 나와 담배 한대를 꺼내어 무는데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조금 무서운 인상이었지만,

나에겐 언제나 천사 같은 미소를 지어주시던 할머니였다.


"생전에 얼굴이나 한번 뵀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긴 세월이 흘러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을도 사람도 많이 변한 모습에 쓸쓸함이 가득한 고향에서의 오후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