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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Sep 19. 2022

솔로 크로스컨트리 2


  교관의 응원을 받으며 브리핑 룸을 나왔다. 디스패치 데스크에서 비행기 열쇠와 서류가 담긴 널찍한 철 박스를 받았다. 우리는 그걸 캔이라고 불렀다. 캔을 받아 비행기 주기장을 향해 걸어갔다. 많은 비행기 가운데 내가 오늘 타야 할 비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비행기보다 내가 타야 할 비행기만 유독 오래돼 보이는 것 같았다. 낡고 오래돼 보이는 비행기 앞에 다가가 땅에 고정시키고 있는 끈을 풀었다.  


  문을 열고 왼쪽 자리에 앉았다. 뒷자리에 있는 가방에서 아이패드와 노트패드를 꺼내 내 무릎에 고정시켰다. 필요한 정보를 받으면 바로 받아 적기 위해서였다. 이제 정말 혼자 남겨졌다. 두 명이 앉으면 비좁았던 그 공간이 오늘은 너무 넓게 느껴졌다. 서로 붙어 앉아 땀을 흘려도 좋으니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서에 따라 비행기를 조작한 후 시동을 걸었다.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프로펠러가 빠르게 회전했다. 아무 이상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비행기 보고를 준비했다.


  보고 절차를 써놓은 종이를 꺼내 순서에 맞춰 도착지인 푼타고라 공항까지의 경로를 보고했다. 한마디 한마디 입을  때마다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오늘의 비행 루트, 날씨 등 절차대로 보고하며 필요한 정보를 받아 적었다.  손과 눈은 여전히 바쁘고 긴장을 놓을 수 없었지만 정신이 뚜렷해지는 완전한 몰입이 시작되었다. 지상 절차를 마치고 활주로를 배정받아 브레이크를 떼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보다 바람은 더 강했고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활주로 옆 풍향계는 강하게 펄럭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요크를 눕혀 바람에 날개가 들썩이지 않도록 눌렀다. 플로리다의 기후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렇게 바람과 다투며 활주로 앞에 도착했다. 브레이크를 잡고 관제사의 이륙 허가를 기다렸다.

Cleared for take off, Safe flight!


  관제사의 이륙 허가가 떨어졌다. 나의 솔로 비행을 보고 받은 관제사의 응원과 함께 나는 속도를 올려 활주로 안으로 진입했다. 이제 정말 혼자 비행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활주로 위에 올라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스로틀을 끝까지 밀어 올리자 비행기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빨라지는 비행기 속도가 바람에 저항을 크게 받았다. 활주로 중앙선 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요크와 러더를 움직였고 눈은 바쁘게 계기판과 밖을 번갈아 가며 확인했다.


  비행기가 일정 속도에 다다르자 활주로에서 뜨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에 비행기는 휘청였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이 불안정했다. 나는 속도와 고도계를 끊임없이 살피며 일정한 속도로 상승하기 위해 분투 중이었다. 조금만 높게 상승해도 속도가 줄어 양력을 잃을 수도 있고 반대로 조금만 천천히 상승하면 계산한 시간까지 일정 고도에 다다르지 못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센 바람과 싸우며 올라가던 그때 관제사는 나에게 새로운 방향과 고도를 지시했다.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따라야 하는 지시사항이기 때문에 곧장 방향을 전환했다. 기수를 지시한 방향으로 틀자 비행기는 천천히  방향으로 기울어지며 고도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맞바람이 강한 탓이었다. 


  바람에 휘청이는 비행기를 진정시키며 허가받은 고도에 도달했다. 나는 비행기 요크를 누르고 쓰로틀을 당겨 안정 속도를 넘지 않게 조절했다. 비행기는 한결 진정되었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 이대로 목적지를 향해 가기만 하면 됐다. 이륙 후 십분 남짓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손에 힘이 풀렸다.


  정면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내 비행기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덕분에 그 바람을 맞으며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아래를 보니 푸른 땅과 나 사이에 작은 뭉게구름이 떠있었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한번 내부 기기를 살폈다. 고도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속도에도 크게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정면을 바라보았다. 높은 산지가 없는 플로리다 지형 특성멀리 있는 지역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머리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은 더욱 강했고 요크를 잡고 있는 팔이 유독 뜨거웠다.


  땅 아래 파란 하늘 아래 푸릇푸릇하게 자란 나무와 큰 호수 옆 마을이 보였다. 자연의 모습을 유지한 채 그 옆에 자그마한 마을이 듬성듬성 있었다. 약 2킬로미터 정도 위에서 바라본 땅은 근심 걱정 없이 푸르고 평온했다. 사람은 고사하고 도로 위 차들도 신경 써서 봐야 할 만큼 작은 모습으로 줄지어 가고 있었다. 가끔 한국에서 등산을 갔을 때 높은 산에서 바라보는 느낌과는 달랐다.


  일반적으로 여행 갈 때 타는 비행기는 보통 지상으로부터 11킬로미터 떨어진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너 이동한다. 이때 눈으로 확연히 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이 착륙시간을 포함해 20분 남짓이지만 이륙과 착륙 때 비행기의 큰 변화로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다. 해 아래 땅을 가장 적절한 위치에서 이렇게 오래 바라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연의 푸름과 인간이 만든 문물의 조화를 느꼈다. 가장 불안한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완전한 평온함이었다. 이렇게 일할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생각했다.


   크로스컨트리를 준비할  생겼던 두려움이 설렘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돈을 얼마 못 벌어도 고 큰 항공사 기장이라는 소리는 못 들어도 좋으니 비행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구나 싶었다. 삼십 년 정도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 봤지만 이번에야 말로 가장 행복한 일을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기체 밖을 바라보며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멀리 낯익은 공항 활주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푼타고라 공항의 관제사는 친절하기로 유명했다. 이곳을 다녀온 학생들은 꼭 한번 가봐야 할 공항으로 푼타고라 공항을 추천했다. 첫 비행하는 학생들에게 친절한 관제사가 있는 공항은 바쁘고 큰 비행기들이 다니는 공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했다. 나 역시 안전하게 그의 통제를 받으며 푼타고라 공역에 진입했다. 첫 크로스컨트리 비행을 하는 학생인 것을 아는 그는 세세한 상황까지 알려주며 나를 활주로로 안내했다.


  오전 10:45분. 나의 첫 크로스컨트리는 약 한 시간 이십오분에 걸쳐 안전하게 푼타고라 공항에 도착했다. 첫 솔로 비행에서 나의 비행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은 설렘과 기대로 변했다. 지금은 학생이지만 조금 먼 미래에 기장으로써 누릴수 있는 행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 비행 50시간도 안 한 학생들에게 첫 솔로 크로스컨트리는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 비행에 대해 그리고 이 직업의 매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활주로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착륙을 마쳤다. 바로 활주로를 빠져나오라는 관제사의 말에 쉴 틈 없이 그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나와 다시 활주로 입구로 향했다. 입구로 가는동안 아까 꺼냈던 보고 절차가 쓰여진 종이를 서둘러 집어들었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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