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인천과 공항을 잇는 영종대교 위를 달리는 일은 언제나 설래는 일이다. 그게 여행이던 누군가를 마중을 나가는 길이든 이유는 설레는건 마찬가지다. 유난히 비싼 톨게이트를 지나면 넓은 도로와 더 넓은 하늘이 눈에 가득 찬다. 항상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영종대교 위는 항상 구름 한 점 없고 환해 보이는 것 같다. 조금 달리다보면 푸른 바다 위를 묵묵히 지나가는 비행기가 자주 보이는데 공항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침내 나를 태운 차가 국제선 공항 출입구에 멈춰 섰다. 차가 별로 많지않아 넉넉하게 인사할 시간까지 충분할 것 같았다. 공항 게이트 입구를 따라 줄지어 정차한 차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짐을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여유롭게 차에서 짐을 내리고 함께 온 사람들과 작별인사 하는 중이였다.
니를 배웅하기 위해 따라온 친한 동생 두 명과 간단한 포옹으로 작별 인사 후 공항 프런트에 짐을 보내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비행기 탑승 입구와 게이트가 연결된 좁은 브릿지를 따라 걷다 만난 승무원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두리번거리며 제 자리를 찾습니다. 비스니스석을 지나면 14시간에 장거리 미국행 비행을 위해 고른 맨 앞 좌석에 짐을 풀고 자리에 앉습니다. 이번 비행은 긴 시간 동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갈 자신이 없어 비즈니스석 다음으로 큰 좌석을 예매해 두었습니다. 비즈니스석을 지날 때마다 그들이 느낄 편안함을 부러워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부류에 속했다는 마음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비행을 배우러 가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이곳이 새삼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평소엔 관심 없었던 비행장 시설물과 비행기 내부가 조금 공부한 탓인지 눈에 익숙하게 들어옵니다. 그렇게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혼자 안다는 듯 이곳저곳을 바라보며 즐기고 있을 때 비행기는 서서히 큰 몸을 움직여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고 있습니다. 활주로 중앙에서 멈춘 비행기는 잠깐 동안 가만히 있더니 큰 소리와 함께 빠르게 달려 기체를 들어 하늘을 향해 본격적으로 상승합니다. 창 밖으로 점점 작아지는 건물이 보입니다. 짧지 않은 기간 한국을 떠날 생각에 아쉬움을 느낄새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믿기지도 않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내가 비행을 배우러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다니!'
비행기가 일정 고도에 도달해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승무원에게 받은 담요를 꺼내 듭니다. 손으로 펼쳐 담요 끝을 발끝으로 밟고 배까지 쭉 끌어올려 덮고 귀에는 노이즈 캔슬링을 틀어놓은 이어폰을 꼽습니다. 머리는 고요해지고 귀는 약간 멍한 익숙한 상태가 되자마자 몸을 뒤로 기댄 채 눈을 감습니다. 그제야 머릿속으로 비행기 안에 있기 전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곱씹어봅니다. 14시간에 비행은 혼란스러운 기억을 정리하기 알맞은 시간입니다. 비행은 제가 보낸 삼십 년을 통틀어 가장 큰 도전입니다만 준비하고 결정해 한국을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개월. 어떻게 흘러갔는지 순서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간 벌어진 일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쌓여있습니다. 비행기에 실려 가는 제 모습은 마치 이미 예정되어 있었지만 나만 몰랐던 길을 뒤늦게 서둘러 출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덕에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또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짐작해 생기는 두려움이나 의심을 느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심지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할 정도였으니깐요. 그때 고요한 귓속에 이어폰 사이를 비집고 들린 기장의 안내방송에 묘한 두근거림이 느껴집니다. 마치 언제 간 저 말의 책임감을 갖게 될 날이 올 것 같다는 설렘에.
“Welcome on Board. This is captain spea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