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갑니다. 필요한 책 있으면 가져가세요. 책이 많아서 다 사진을 올리지 못합니다. 오셔서 구경하세요. 가격은 다양합니다.”
온라인마켓에서 만난 책주인을 따라 들어간 거실에는 햄스터 집이 몇 개 있고 제습 용품 ‘물먹는 하마’가 곳곳에 있었다. 정작 햄스터 집에 햄스터가 없는지 쳇바퀴는 조용했다. 마치 정물처럼 보였는데 아마 그런 시간이 꽤 지난 느낌이었다. 어떤 움직임이라도 포착하려는 포식자처럼 아무런 기척이 없는 햄스터 집을 주시하다 그만두고는 여기저기 놓여 있는 물먹는 하마의 빨간 뚜껑으로 눈을 돌렸다.
이사를 앞둔 집이라는 것을 엉망진창이 된 살림으로 알 수 있었다. 발끝에 차인 막걸리 빈 병들이 방향이 없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햄스터가 없는 햄스터 집, 물먹을 힘을 다 써버린 물먹는 하마, 이미 마셔버린 빈 술병 등등. 곧 이 집이 비워지리라는 것을 입구부터 입을 벌려 떠벌리는 수다쟁이처럼 수선스러웠다.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서니 책이 가득한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이미 방바닥에 앉아 책을 고르던 있던 그녀는 소설 쓰는 사람이라 했다. 책을 펼쳐보면서 주인에게 내용을 물었고 이미 읽은 책들에 대해 주인은 대답했다. 간단하게 ‘서사가 있어요’라든가, ‘호불호가 갈릴 거예요’라는 두 문장 외에 더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대화랄 것도 없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책장을 살피니 대체로 소설책이었다. 한쪽에 구분해 놓은 책이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주식에 관한 책임을 알 수 있었다
책장에는 특히 한국 현대소설이 많았다. 주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만지면서 책 속의 인물을 생각했고 내가 읽었던 책이 보이면 반가웠고 읽고 싶었던 책이 눈에 띄면 책을 꺼내 펼쳐보았다. 아직 읽지 못한 소설에 대해 책주인의 감상을 물어보았더니 주인은 ‘제가 표현을 잘 못해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요’라며 자신 없는 말주변에 대한 변명을 고백처럼 했다. 그것이 소설을 썼던 이유이거나 소설을 포기하려는 이유라도 되듯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어떤 것일까. 주인이 소설가가 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지만, 느낌으로는 너무도 깊고 단단한 이유가 분명한 것 같았다. 그중 은둔의 판타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살림살이가 은둔 생활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 기묘함이 있었기에 은둔 생활을 자처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한쪽에 방치된 듯 켜져 있는 노트북에서 원고로 보이는 글에서 깜박이고 있는 커서는 낱말을 찾아 헤매는 이 방 주인장 마음으로 다가왔다. 깜빡임은 무언가를 표현하기보다는 표현하지 못한 것을 찾는 오리무중의 탐정 같았다.
결국 탐정을 포기하고, 소설을 포기하고, 공간을 채우고 있는 책을 포기하고 주식 세계로 떠나려는 주인. 더 깊은 은둔의 세계로 가는 것은 아닌지 잠시 염려했다. 주식 관련 책만은 팔지 않는다는 주인의 목소리가 쟁쟁거렸다.
먼저 와서 책을 고르는, 열 편 정도 소설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는 그녀에게 주인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 현실 직시가 서사인 소설을…’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소설 쓰기를 포기하는 사람의 책으로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일이 일어난다면, 어쩌면 포기와 용기는 한 뿌리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책장을 살피면서 금을 캐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던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라 귀에 쨍, 부딪쳤다. 금광을 열어주고 곧 떠날 주인은 금을 두고 가는 것일까. 책을 금처럼 소중하게 여겨왔던 날들, 책 속의 언어를 갈고닦으며 자기 시각에 의해 각색되고 도형 되었던 언어들, 가끔, 자기 밀실인 작품에서 속삭였던 글자와의 비밀을 모두 버리고 가는 것일까. 방 가운데 섬처럼 쌓여 있는 책이 그녀의 책장으로 이사할 것이다. 새 주인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 폐지로 분류되는 운명이 아직 유예되므로.
주인은 빼빼 마른 기억 창고로부터 이사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소설 쓰기에 이미 바닥난 소재와 생활의 빈곤과 심신의 쇠약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건지도. 방에서 책 냄새가 아니라 치열함에 주눅이 든 자신의 불만이나 부족함, 뛰어나지 않은 어휘력에 대한 인정, 고유의 문체가 없음을 고백하고 포기하는 냄새가 났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활력, 뭔가를 써 내려가는 표현 의욕이 사라진 지 꽤 시간이 지난 냄새였다.
이가 빠진 듯 이미 책이 빠져나가 듬성듬성한 책장을 보며 생각했다. 포스트잇이나 밑줄의 흔적이 있는 주인의 책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어떤 기분일지. 아마,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하나둘 버리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실속 있는 삶의 이유를 찾기로 했는데 이제까지 읽었던 책이 실속 있는 삶을 찾는데 쓸모가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 마음일지도. 이야기 소재를 모아 두었던 기억 창고는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처럼 버려야 하는 나부랭이만 남아있다는 허무한 마음일지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잡음이며 최악의 현실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장 구석구석에도 물먹는 하마가 빨간 신호등처럼 있었다. 왜 그렇게 많은 제습제가 필요했을까. 습기가 많은 지하도 아니고 허름한 빌라는 더구나 아니었는데 말이다. 현관문 앞에서 책을 건네주던 주인이 종이처럼 깡말랐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주인은 몸과 마음에 있는 습기를 제거하고 싶었던 것일까. 습기로 흐느적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몸과 마음이 바삭해져 오히려 부서지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녀를 다시 만났다. 우연이라기에는 필연의 이유를 꼭 찾아야 하는 만남이었다. 신문사 신춘문예 시상식에서다. 그녀는 소설 부문 수상자로, 나는 수필 부문 수상자로 만났다. 그런데 그녀는 그날, 한 공간에서 책을 고르며 함께 있었던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같은 지역 사람이라서 알은체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또렷이 기억한다. 소설가의 꿈을 포기한 사람의 책에서 금을 캐던 그녀를. 소설가의 꿈을 포기한 사람의 고뇌와 끙끙대는 열망이 담긴 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 매일 글을 썼을 그녀를.
소설가의 꿈을 포기한 책주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쓸쓸했다. 이 사건으로 직업으로 글을 쓰지는 않지만 직업처럼 글을 쓰는 마음가짐이 생겼듯이 그녀도 다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녀의 바람대로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 역설과 은유와 환유로 가득한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계속 썼을 것이라고. 인물을 잘 모르면 서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소설작법서 내용을 숙지하면서 이야기를 홈질했을 것이라고.
그날의 일을 기억하냐고 그녀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야기는 둔하고 힘을 잃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온전하게 자신의 존재감으로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처럼, 오늘을 지나 내일로 가는 메시지다.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투명한 모습에 대한 신뢰다.
그녀의 이야기는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부풀리지도 삭제하지도 않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