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그 이름

by 남쪽맑은물

그녀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 맥주 공장이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 다녔는데 맥주 공장을 지나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 이름도 공장 이름이고, 학교 위치를 알려 줄 때도 공장 이름만 대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어마무시하게 큰 공장이었다. 텔레비전 광고에 맥주 회사가 나오면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유명한 이름. 지금은 그곳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학교에서 일정한 시간은 아니지만 점심시간 전쯤, 특정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푸들푸들 날아다녔다. 창문이 닫혀있어도 그 틈새로 냄새가 교실로 들어와 너스르르한 코털을 간질거렸다. 구수하면서도 맛있는 냄새, 식욕을 느끼게 하는 냄새가 얼마간의 편안함을 주곤 했다. 그 냄새를 맡으면 집에 가고 싶었다. 뻥 뛰기 냄새 같기도 과자 냄새 같기도 밥 뜸 들이는 냄새 같기도 했던 효모 냄새.

공장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냄새의 농도는 더욱 짙었다. 그 묘한 냄새는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사람을 여유롭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는 힘, 비가 오지 않아도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볼 수 있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을 생각보다 쉽게 해결하는 힘, 약간의 자포자기를 끌어들이는 힘, 사람을 피폐하고 맹수의 눈빛을 만들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술 말이다.

그때, 맥주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녀는 스무 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거품으로 막을 친 갈색 맥주를 마셨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있지만, 사이다 거품과는 빛깔이나 모양이 다르고 냄새도 쉬척지근했다. 거품으로 완전하게 위장한 갈색 술은 쓴맛이었다. 약처럼 쓰지는 않았지만, 약간 신맛이 나는 쓴맛이랄까. 아무튼 그동안 먹어 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맛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궁금했던 그 맛은 생각만큼 무지개처럼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맥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고, 맥주를 마시며 삶을 마주하고, 맥주를 마시며 맥주잔에 일긋거리는 자기 얼굴을 보며 웃곤 했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그 누구의 사랑과 영혼, 그 누구의 질문과 대답이 지나가는 청춘임을 확인했다. 티티거리며 흩어지는 그녀의 웃음은 바람이 가져오는 이야기로 확장하다가 조금 넘치는 부드러움으로 변했다. 청춘의 존재쯤으로 곧 물러날 시절에 대한 넉넉함으로.

맥주는 후줄근한 미래였다. 그때는 그랬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종종 대형마트가 보이는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마신다. 치킨집 문 앞 거리에 펼쳐진 플라스틱 원탁을 사이에 두고 으늑하게 마주 앉아서 마시는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다. 회색 마트 건물이 시내 한복판에 선명하게 그어진 사거리 횡단보도 중심을 압도한다. 불 밝힌 자동차는 쉼 없이 달린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뀔 때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서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찡그린 운전자 얼굴이 열려 있는 자동차 문으로 보인다. 신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못내 짜증이 난 얼굴이다. 짜증 난 운전자 얼굴에 고정된 그녀의 시선이 특별할 것 없는 풍경에서 잠적해 버린 시간을 추적한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급한 일이 있는 듯 쏜살같이 출발하는 운전자. 소음이 낙엽처럼, 거리에 너풀거린다.

저녁이 되면, 치킨집에 사람이 모인다. 엷은 밤이 점점 짙어지면, 의자와 테이블 사이를 유람하는 이야기가 점점 풍부해진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양복 입은 사내들의 둥그런 입담이 거리의 소음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간다. 넥타이가 반쯤 풀어져 있는 사람, 의자 깊숙이 몸을 꾸겨 넣은 사람,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 밤하늘을 보는 사람, 한 손에는 맥주잔을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신다. 감당하기 힘든 피로를 데리고 하나둘, 우세두세 모여드는 동네 주민들. 불쑥 튀어나오는 잠꼬대 같은 말들이 뒤엉킨다. 구석진 건물 귀퉁이에 서서 새의 한숨 같은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낯선 얼굴에서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 스친다.

그녀의 맥주잔이 반쯤 비어 있다. 회오리치던 거품도 사라졌다. 사내들의 웃음소리에, 기포 하나가 액체 위로 떠오르다 사라진다. 손가락으로 맥주잔을 툭, 툭 쳐본다. 다시 몇 개의 기포가 춤을 추면서 위로 오르다 자취를 감춘다. 지금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일,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문제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포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기를 바란다. 너무 지나친 걱정이 무음으로 지나가는 시간처럼, 무성영화의 장면처럼,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말한다. 마치 짬따랗고 분명한 진실을 말하듯이.

천재성보다 더 힘이 있는 젊음을 보냈던 그녀.

천재보다 더 지혜로운 중년을 보내는 그녀.

천재 같은 경험과 삶의 애달픈 증거로 노년으로 항하는 그녀.

미묘한 부분에서 적절한 대답을, 언제나 궁금한 것을 찾는 그녀.

어수선하고 복잡한 오늘을 사는 그녀.

마지막 남은 재산처럼 챙기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생각하다가, ‘훗훗’ 웃는 그녀.


그녀는 불특정 타인이 나의 일부이며 그녀 또한 엉뚱한 타인과 동일한 존재임을 생각하며 맥주를 마신다. 많은 것을 상실하는 삶에서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거울만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타인의 시선으로만 자기를 볼 수 있다는 역설을, 맥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오련한 빛에서 온몸을 뒤흔드는 예감을 감지한다는, 엉뚱하게 들릴지 모를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횡단보도를 바라보는 마주 앉은 남편의 나른한 눈동자를 보다가 맥주잔을 들어 누런 액체를 쳐다본다. 또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소리가 또 들린다. 술잔의 술이 부세부세 헝클어진다.

맥주는 걸근걸근한 인생을 설명하기 힘든 팽팽한 현실이다. 그 가운데에서 터득하게 되는 갸륵한 인내 같은 것, 가끔은 염력처럼 이론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긍정 같은 것이다. 지금은 그렇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눈을 감기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