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기만 해도

by 남쪽맑은물

성당으로 향하는 길이 한적하다. 그녀가 마음을 내려놓을 곳을, 그녀의 마음이 타인의 눈빛에 동요되지 않는 세상을, 우는 어린것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아픔이 되지 않는 마음을, 햇살 같은 웃음소리가 편안하게 들리는 방향을 찾다가 우연히 오게 된 곳.

그녀는 말한다. 부모도 아니었다고. 어찌 부모라면 그렇게 자식을 보낼 수 있냐고. 그녀의 얼굴이 아니다. 귀신 형상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분명히 죽음 뒤에 남아있는 넋이다. 가슴에 묻은 어린것의 영혼 따라 하늘로 올라가려는 그녀는, 그 눈빛은 죽은 자의 혼이 깃든 허망한 습기다.


돌계단 위로 보이는 성당 첨탑. 속절없이 눈물이 고인다. 가을 녘 햇빛은 눈이 부시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고였던 눈물이 햇빛에 반사한다. 햇살이 어찌나 빛나던지. 그지없이 따뜻한 해의 빛이 눈앞을 어지럽게 만든다. 고개를 숙이고 하나, 둘, 셋… 몇 개였더라. 계단을 세다 그만둔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기대할 것이 무엇인지도 흐릿하다. 그녀는 왜 이곳에 왔을까. 오히려 붕괴하는 삶에서 오는 불안을 마주하기 위해서일까.

기도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화다. 그러기에 교감을 전제로 한다. 초월적 힘을 상상하며, 대화하는 이에게 집중하는 것. 기도는 상호 교감을 위해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헤아리며 동의에 이르는 것.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안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오래된 기도」, 이문재-

어린것을 키우는 모든 생명이 지닌 원천은 무엇일까. 어린것을 키우는 어미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얼얼한 가슴이기에 세상을 견디며 두 손을 가만히 그러쥘 때, 배고픈지도 모를 기쁨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생의 근원이 산산이 바스러질 때, 어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품에 있던 어린것을 빈 나무처럼 바라보아야 하는 기억을 버릴 수 없는 것. 그 기억 때문에, 속수무책인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분노한다. 분기탱천한 마음으로 어린것의 이름을 부른다. 내부 진앙을 찾기 위해, 미혹이 들끓는 진원지를 알기 위해 아들을 먼저 보낸 성모를 찾는다. 그 앞에서 그녀는 눈을 감는다. 심연에서 꿈틀거리는 아이 이름.

슬픈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성모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빛은 그녀와 같은 어미 마음. 자식은 부모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기도문처럼 가슴에 들어온다. 어린것은 그녀의 등에서 꼼지락거렸던 기억이 있을까. 따뜻한 등에서 들려오던 어미의 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던 황홀감을 간직하고 있을까. 우꾼한 등에 대칭으로 돋아난 단단한 뼈의 감각을 기억할까. 어떤 기억으로 삶의 원형을 만들어 갔을까. 그 어린것, 어린 삶은 어디로 갔는가. 하늘에서 그녀를 보고는 있을까. 어린것의 넋이 햇빛 되어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일까.


노을처럼, 불그스름하게 나타나는 성당의 자태. 그래, 그랬구나. 붉은 벽돌을 켜켜이 쌓아 건물이 된 성당. 죽음으로 이어가는 인간 세계에 대해 붉은 벽돌은 무엇을 기억하나. 먼저 가버린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 물든 울음이 빨갛게 진동하는 평야. 그 혈흔은 상처로 만들어진 지도다. 삶과 죽음에 이르는 존재 가치는 깊고도 깊은 인식을 형성한다. 정갈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죽음도 품격이 되어 슬픔으로 피어난다. 신자들 죽음 값으로 불붙은 슬픔은 꺼질 줄 모른다. 붉게 물든 단풍이 서러움을 토해낸다. 슬픔에 타버린 잎들이 성당 마당에 떨어진다. 떨어진 낙엽으로 핏물이 물들어버린 성당 뜰. 죽은 이의 혼이 춤을 춘다. 타오르는 슬픔이 붉은 벽돌을 더 붉게 물들며 계절에 순응한다.

순교자 묘지 주변에 있는 십자가의 길. 돌 위의 14처 동상은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가장 잔인하고 역겨운 처형’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자식을 죽음으로 보내는 부모 마음. 애통하고 애끓는 마음은 속울음이다. 부모 눈에 모든 자식은 어린것이다. 그 여리고 어린것이 누구를 위해 죽음으로 걸어가는가. 속죄 값이 그리 무거운 것인가. 내가 지고 가마, 해도 그럴 수 없는 길. 그 길을 성모의 어린것이 드디어 가고 말았다.

붉은 단풍 사이로 우뚝 서 있는 고목. 오랜 시간을 견뎌온 나무는 ‘십계명은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가하는 공격성을 제어하려는 최초의 시도’라니.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2022, 청미래) 나무도 세상 모든 공격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터, 십계명을 뿌리에 새기고 있을지 모를 우직한 나무는 흉몽이어도 길몽이어도 지나는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단단한 얼굴이다. 나무뿌리 근처에서 숨을 쉬고 있는 작고 소중한 생명을 어찌 모를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어린것에게 했던 생각에 그녀는 떨리는 심장을 움켜잡는다. 유령 같은 공포심에서 벗어나는 세상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불안으로 지낸 날들이 되살아나 그녀는 귀신같은 얼굴로 서 있다.

성당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어떤 이들의 뒷모습.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햇빛이 어떤 이의 등을 감싼다. 그 색이 총천연색이다. 천상이 이런 모습일까. 어린것은 천상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그녀는 기도하는 어떤 이의 뒤에 앉아 슬픔이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붉은빛이라 생각하며 붉은 눈물을 흘린다. 슬픔이 너무 슬퍼서 아름답다니…. 떨쳐버리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속죄의 기도는 끝이 없다. 진행 중이다.

어린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코 그녀의 품에 안길 일이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성모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그 세월을 보내느냐고, 잊히지 않는 결락의 아픔을 어떻게, 어떻게 견디며 지내느냐고. 단풍 물드는 계절이면 어미는 미친년이 되어버린다고, 내 어린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혹시 당신과 함께 있는 거라면….

잠을 자기 전, 잠을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다가, 차를 마시다가, 손을 씻다가, 책을 보다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가, 자동차 시동을 걸다가, 거리를 걷다가, 통화하다가, 꽃망울이 올라온 것을 알아채다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그러다가, 거울에 그녀의 몸을 돌려 등을 보다가, 눈을 감는다. 어린것은 그녀의 등에 없다.


성당은 평야를 향하고 있다. 시선을 멀리 두면 바다가 보일까. 종교는 이념을 넘어 선한 자리에 활짝 피는 꽃 같은 것. 꽃처럼 옹기종기 모여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 그렇다면 세상이 기도 공간으로, 눈과 귀가 맑게 씻기는 곳으로 충분하리라. 하늘을 향하는 시선 끝에서 마주친 형상,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이고 있는 예수의 어미. 한동안 흐르는 아린 침묵을 깨고 성모에게 다가가 두 손 모아 고개 숙이며 그녀의 어린것 이름을 부른다.

마음껏 눈물을 흘려도 괜찮을 곳에서 흐르는 눈물은 댕댕댕, 종소리 되어 멀리멀리 퍼진다. 맥놀이 하듯 모은 두 손에 붉은 나뭇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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