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는 그의 소식을 들으니 만나야 할 것 같았다. 그의 공백으로 기억되는 긴 시간도 그녀가 살아온 날을 형성하는 지형도에 소리 없이 동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동안 그가 존재하지 않는 빈 곳에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정말로 그저 빈 공간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긴 침묵에 어울리는 텅 빈 감정을 어색함이나 머뭇거리는 경계 없이 그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흐르기는 했는지, 그를 만났을 때 조금 어색했다. 그와 걷던 어느 골목 어귀에 두고 온 밀담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골목에 묻어 두었던 그림자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까지 따라온 어는 집 담장에 핀 꽃들이 후각을 자극하는 듯했다. 오래 묵은 모든 감정이 교회 십자가 불빛처럼 붉게 물드는 듯했다.
그녀는 한동안 울멍울멍 말을 잇지 못하면서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잠시 머뭇거렸다. 그가 입술을 조금 움직이며 그녀를 봤는데, 하필이면 물고기가 뻐끔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다니. 그도 어색했던 모양이다. 맹맹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더니 꺼칠한 턱을 손으로 만졌다. 턱을 만진 손을 흔들며 알은체할 때, 그녀도 그에게 가벼운 손짓으로 화답하며 어색함을 피하려 애썼다.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그의 행동, 팔을 들어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는 모습은 여전했다. 손에서 웃은 얼굴이, 그 옛날 표정이 살아나는 듯했다. 다소 아릿한 느낌이다. 그는 얼굴 변화보다는 손으로 표출하는 감정이 더 적극적이었고 훨씬 회화적이었다. 어리둥절하고 복합적인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말보다는 손이 더욱 감각적이었다. 심연으로 가라앉았던 감성과 그 감성을 건져 올리는 이성이 그의 손에 존재했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으로 파고드는 자기 최면 같은 힘이랄까.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기억에서 되살아났지만, 그녀만의 감상쯤으로 생각했는데.
그가 손으로 의사 표시하거나 언어를 전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말로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밥 먹었니? ’, ‘우리 나갈까? ’, ‘머리가 아프다’를 말하지 않고 손으로 표현했다. 말로 하기 복잡한 추상적인 것도, 절거덕거리는 사건도 손동작으로 표현했던 그였다. 책을 빌려주고, 술잔을 나누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고, 어깨를 감싸고, 손바닥에 온기를 전해주던 손. 그의 손은 명맥을 이어가는 삶에서 최소한 없어서는 안 되는 자원이었다.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이 손으로는 가능했던 사람.
그는 항구에 살고 있었다. 그의 웃는 소리도 예전처럼 박자가 있었고 웃을 때 눈을 살짝 감았다 뜨는 것도, 고개를 주억이는 버릇도 그대로였다. 그의 표정에는 부드럽게 바랜 시간이 묻어있었다. 매일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고 잠이 들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살게 된 사연을 몇 마디 말과 뒤미처 이어지는 염염한 침묵으로 전했다. 바다 근처에서 일상을 보내는 그를 상상하다가 학창 시절을 소환하고 말았다. 말 대신, 손으로 표현해도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아들었던 그녀.
이제는 세상이 온통 검은색으로 보이는 우울함은 지난 것 같았다. 빛이 있어도 빛을 보지 못하고 차오르는 눈물에 몸과 마음이 젖는 허무한 일상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 헤쳐 나가기 어려운 문제가 여전히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삶이 무덤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듯 보였다. 사회 고립에서 오는 어두운 장막을 벗어나는 방법이나 함부로 발설할 수 없으나 느낌이나 직감으로만 알 수 있는 일들.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고민에서 해방되는 그만이 아는 해결법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더욱 토설하기 어려움에서도 종종 탈출하는 지혜 같은 것.
그와 그녀는 말보다는 말 사이 흐름을 해독하는 데 공을 들였다. 물론 그는 말과 손동작으로 그의 의사를 표현했지만, 어쩌면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말보다는 침묵에서 의중을 낚았는지 모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어느 순간, 그의 목소리가 떨렸고 그녀의 마음이 떨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습기가 느껴질 때 그녀의 눈시울에 습기가 매달리기도 했다. 청춘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지난한 세월로 이어지는 현재성이 있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지만, 그 어디까지는 지척에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시간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닷가에 살다 보니 물때를 아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되었어.
그의 말에서 ‘지금’이라는 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 밀물과 썰물 높낮이는 삶에서 만나게 되는 격정과 우울을 조율하는 과정이며, 하루에 두 번 드나드는 썰물과 밀물이 지닌 천성은 그의 삶을 닮았다고 했다. 특히 달의 인력으로 생기는 보름사리와 그믐사리 풍경은 죄지은 것처럼 마음을 꼭꼭 싸매던 삶이, 타인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삶이, 감당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하는 삶이 꼭 그렇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생각에 색을 입히고 방향을 바꾸면 풍경이 된다면서, “바닷물이 풍성해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데, 밀물이라 해도 보름과 그믐 중간쯤에서는 조금 때여서 포구에는 물이 별로 없어”라며, 마치 조그만 개울 같다고 말할 땐, 양손으로 좁은 개울 폭과 적은 물양을 표현했다.
공유한 추억이 있어서 그랬을까. 추억이라는 낱말은 햇빛이 비치고 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사실, 추억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 착각일 수 있다. 지난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 나눌 때 지난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으려 조심하지만, 그 조심한다는 것이 사실 확인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 그것은 필요 충분하고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 비밀보장에 유해한 요소일 경우 오해하게 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추억이 유동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로 튀어 날아가 어디선가 오래된 이야기로 각색되어 뒤흔드는 추문이 되어 돌아올 때, 추억은 굶주린 추억 따위가 되어 뭉개버리고 싶어지니까.
그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그녀는 무척 놀랐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가늘게 들려왔던 전화 목소리,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 말고는 모든 궁금증을 침묵으로 삼켜버리고 끊겼던 전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와의 일들이 시간과 공간으로 와락 달려들어 파도에 쓸려가듯,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묘하게 사라진 현실이 시절을 서글프게 했다. 헤어짐이 헤어짐으로 막을 내릴 수 없음을 그녀는 운명처럼, 필연처럼 알고 있었는데, 참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시절은 점점 낮아지는 밤처럼, 어둡고 침울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면 들리는 소리가 머리에 잠식한 어둠을 걷히게 하곤 했지만, 금쪽같은 시간에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통속적인 사연은 낯선 교훈 앞에 서성이는 기분이 들게 했다. 어떤 철학서나 지혜로운 선인에게서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묘한 언어들이 아우성치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언어를 어떻게 나열해야 이 더러운 기분을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던 나날들.
드디어 다시 만난 그는, 우매한 몽상가가 발설하는 헛소리가 아닌, 살아가는 일에 힘이 나는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마치 찰랑이는 파도 소리에서 삶에 대한 애착을 찾듯이, 봄날 바닷가 마을은 세상 만물을 옹호하는 보호자처럼 보였다. 참 아름다운 봄이었다. 연두색이 조만간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어 버릴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오월, 그를 만나기를 잘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잘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은 정말 사실이라고. 석양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 거짓일 수 없지 않은가.
어리둥절한 사연을 남겨두고 말없이 그녀 곁을 떠난 그 시절이의 그는 일렁이는 물결과 어디로 지나는 바람결처럼 스쳐 갔다. 그는 투명한 사람이었기에, 거짓말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기에, 손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의 손이 전하는 언어가 여전했기에, 물고기 잡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삶이, 어망을 만지는 느낌이 그 손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기에 스적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궁금증을 까밝히지 않아도, 느낌이지만 느낌이 최고로 적합한 언어가 되었다.
달빛 어스름한 시간이 되면 검은 바다는 무주공산 장소다. 아무나 주인이 되는 곳. 움직이는 물결이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살아있는 생명체 숨소리. 흐르고 있으니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다색은 바다 언어로 쓴 묘사야. 그 언어를 표현하려면 사람 마음을 알아야 해. 나는 이 바다에서 만나는 모든 그림자가 내 삶이야. 달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는 생존하는 힘이야. 이제는 마음에 무엇을 남긴다는 것은 내 마음에 썩을 것이 없다는 것이지. 그래서 너를 만나 뜨문뜨문하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었어. 적어도 내 말에서, 내 손에서 썩은 내는 나지 않을까 해서. 나는 오랫동안 썰물과 밀물을, 조금과 사리를 기다리면서 살 거야. 잘살아 볼 거야. 달그림자를 기억하며 바다색의 의미를 읽을 거야.
그는 도시로 떠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가 그를 다시 만날지는 알 수없지만, 만약에 만난다면, 그는 바다 언어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전해 줄 것이다. 남아도는 슬픔으로 한껏 늙어가는 삶일지라도 그 슬픔의 찌꺼기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