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번 건강검진에서도 중성지방 수치가 높게 나와서 걱정이다. 지난번 검사 때보다는 수치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기준범위에서 아슬아슬하다. 중성지방은 우리 몸 지방조직 세포 안에 축적되는 지방으로 대부분이 음식을 통해 수치가 증가한다. 칼로리가 높은 간편 식품을 거의 먹지 않고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중성지방이란 놈은 기준범위를 벗어나서 나 잡아봐라, 하며 웃고 있는 것 같다. 튀긴 음식이나 고기 종류도 많이 먹지 않고 근육운동은 아니지만, 매일 걷는데도 영 신통치가 않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칼국수가 원인인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있다. 생선이다. 이유는 비린내 때문이다. 초민감성 기관인 후각은 공중을 떠돌고 있는 몇만 분의 일이 되는 입자일지라도 비린내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그러다 보니 국수도 좋아하지 않았다. 국수와 비린내의 상관관계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국수와 비린내의 관계는 매우 깊다고 확신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 국수 삶은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지면 냄새를 피해 멀리 달아나곤 했다. 국수 삶는 냄새가 비리기 때문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아마도 멸치국물 우려내는 냄새와 섞여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냄새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서 아득한 기억을 불러온다는 글을 어디에서 읽은 기억과 상관이 있어 보인다.
그녀는 칼국수 집이 많은 도시로 이사 오고는 식성이 달라졌다. 해물 칼국수, 얼큰이 칼국수, 들깨 칼국수, 동죽 칼국수, 오징어가 통째로 들어간 칼국수, 부추를 갈아서 반죽한 칼국수, 밤을 갈아서 반죽한 칼국수 등등 다양한 칼국수 종류에 깜짝 놀랐다. 칼국수 먹을 기회가 많아서 먹다 보니 어느새 칼국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동안 먹은 칼국수가 중성지방 수치 증가에 유력한 주범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칼국수 중에서 얼큰이 칼국수를 좋아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매운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칼국수의 매운맛은 묘한 데가 있다. 고춧가루가 멸치국물의 비린내를 잠재운 것이라는 불충분한 근거와 얼큰한 맛이 시원한 맛과 어울린다는 아리송한 의견으로 매운맛을 해석한다. 처음에는 맵다가 점점 입 안이 얼얼해지는 맛은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듯, 시간이 지나면 그 맛이 그리워 다시 먹곤 하니까. 특히 매운맛을 달래주는 쑥갓의 독특한 향이 그만이다. 고춧가루의 아릿한 맛에 매혹당한 혀끝을 달래주는 쑥갓 향이 기가 막힌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고 통증의 일부라고 하지만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드니 그녀에게는 맛이다. 입맛이 퍼석퍼석할 때, 얼큰이 칼국수를 찾는다. 현실과 동떨어지고 싶을 때도 매운 칼국수를 먹는다. 지난밤에 꾸었던 돼지꿈이 개꿈인 것을 알았을 때도, 활달한 상상력이 옹색한 허망함임을 인정할 때도 붉은 멸치육수를 후루룩 마신다. 밀가루는 흡수 속도가 빨라 에너지로 사용하기 전에 지방 형태로 저장되고 또 육수에 들어 있는 과도한 나트륨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칼국수가 중성지방 수치 증가의 요인일지라도 참을 수가 없다.
그녀는 여전히 비린내 나는 음식을 싫어한다. 좋아하지 않은 음식이 있는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다. 그것은 비린내 나는 말이다. 어떻게 말에서 비린내가 날 수 있겠냐마는 호의와 환대가 가득한 말속에 조미료 맛처럼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느낌은 비리다. 먹기 싫은 음식은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말은 그렇지가 않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의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눈빛과 표정, 손짓과 몸짓처럼 광의의 언어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소리를 내는 낱말에는 진정성을 내포한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자주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이제’, ‘그냥’, ‘글쎄’, ‘어쨌든’, ‘정말’, '진짜', ‘예를 들면’, ‘뭐랄까?’, ‘측면에서’, ‘확실하게’, ‘그럼에도’ 등등, 말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서, 의견을 주저하는 의미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상대방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이처럼 언어는 사람의 철학과 관습, 세상을 향한 시선과 함께한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래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개인이 지닌 언어습관은 그 언어를 쓰는 사람과 닮았다.
소가 삼켰던 풀을 밥통에서 도로 끄집어내어 다시 씹듯이, 나누었던 말을 되새김질하는 버릇이 있다. 이 바쁜 세상에 뭘 그리 소심하게 사느냐고 핀잔과 애정 섞인 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나마 말을 조심하기 위한 그녀만의 방법이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타인에게 무안이 될 만한 언행과 그런 행위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없는 사람, 어쩌면 농담이 농담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 사용하는 사람이 바로 그녀일까 봐, 그렇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그녀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 보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은밀한 것을 들키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왠지 그녀에게 속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별 상관이 없다고 넘어가지지 않는 지점에서 비웃음 비슷한 그녀의 궁리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가 속이 좁은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라는 생각에 도달하면 무안해진다.
그녀는 K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K의 말장난 때문이었다. 말이 많으면 실언할 수 있고 그녀 또한 그럴 수가 있기에 관계 정리를 주저하던 참이었다. 자주 얼굴을 보는 관계이기에 껄끄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편함을 넘어 심리적인 불안으로 다가왔다. K의 말장난으로 떠돌고 있는 소문들이 여기저기에 끈끈한 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그 소문으로 곤란한 일이 일파만파 생겼기 때문이다. K가 뱉은 말을 K의 입에 쑤셔 넣고 싶었지만, 호러물이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K가 과장하고 포장한 표현으로 칭찬을 일삼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표리부동한 마음을, 비린내 나는 말을, 느물거리는 속물근성을 뭉그적거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K의 간지러운 말이, 더금더금 냄새나는 말이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을 송장 썩는 냄새로 가득하게 할지 몰랐다. 그녀가 적당히 거절하는 방법을 익히 알아두었다면, 한결같이 웃는 눈으로 긴 시간을 이야기하는 K를 멀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에 중성지방이 흐르는 것처럼, 심리적 혈관에 누리끼리한 막을 치고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생침이 돋던 날들. 비린내 나는 말, 들쩍지근한 말, 미끈거리는 말을 토해내는 K를 결국 멀리하고 말았다.
그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 단절하는 것만으로 능사가 아닐 때, 단절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적당한 대처 방안에 대한 고민으로 고도로 엉켜있는 신경 줄은 더욱 팽팽해진다. 실타래가 풀리듯, 스르르 풀리는 해결책이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지만, 실타래가 더 엉켜버리기도 하니까.
그런데 고민이다. 그녀는 중성 지방 수치가 늘어나는 요인이 칼국수에 있다면 거절해야 하지만, 그녀의 입맛은 아직은 거절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염분이 많이 들어간 국물이 맛이 있다고 훌훌 들이마실지를 결정하는 것은 고스란히 그녀 몫인데 어찌할지 망설이고 있다. 정말로 밀가루가 중성지방 수치를 증가시키는 주범이라면 그녀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인데….
그녀는 사람 관계에서도 적절한 거절이 필요하듯이,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기 위해 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다, 쑷갓을 듬뿍 넣은 매콤한 칼국수를 떠올리다, 헤설프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