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모르는

by 남쪽맑은물
옛날 옛적에, 서울에 다녀온 송 서방이 양초를 가지고 시골로 돌아옵니다. 송 서방은 하얗고 가늘고 길쭉한 양초를 시골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요. 선물 받은 양초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시골 사람들은 상투쟁이 글방 선생을 찾아가 물어봅니다. 글깨나 읽었다는 글방 선생도 도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었지요. 그런데 용도를 알려 줍니다. 그것으로 국을 끓여 먹으라는 잘못된 정보를(전래동화 『양초귀신』 / 강우현 글, 그림 / 보림).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몰라서 물어본 사람들을 무식한 사람이라 무시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은 글방 선생 이야기.

처음 보는 물건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듣는 음악, 처음 읽는 책 등등,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요즘처럼 빨리 변하는 시대에는 더 정신이 없지요. 그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설레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무서움을 데려와 불안한 마음이 증폭시킵니다.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닌가, 나만 바보인가, 나만 세상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마치 양초를 처음 보았던 동화 속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어찌나 많은지요.

그녀는 무척이나 처음이라는 경험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답니다. 특히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기가 태어나 청년이 되는 긴 시간을 그리 보냈다는군요. 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거의 없답니다. 귀찮아하거나 하찮아하는 표정 뒤에 두려움 덩어리가 엄청 크다고 말하더군요. 그녀가 지나치게 자기 비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습니다.

그녀는 익숙한 일과 사람, 장소에서만 살아가며 알고 지내는 몇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전부랍니다. 종종 몰려오는 답답함과 우울함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지만, 세상 사는 것이 다 그렇다는 체념 비슷한 현재 상황에 순응하다 보니 괜찮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그녀의 의식은 몇 가지 옛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과거가 남들보다 훨씬 선명하다고 합니다. 그 마음이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무서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단조로운 일상이 지루해서 지겹다, 답답하다, 따분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는군요.

그런데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비슷비슷한 시간을 견디는 그의 또 다른 자아가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것은 책이었습니다. 에세이를 시작으로 시나 소설을 읽더니 요즘은 그림책으로 확장했다는 겁니다.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는 편견을 깨고 그림과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지요. 지역에서 출판하는 문화예술잡지도 구독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인이 권해 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덜 지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답니다. 지인에게 빌린 책을 읽고 돌려주고 또 다른 책을 빌리는 일상이 새롭고 즐겁답니다. 아,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어떻게 책을 빌리는지도 모르고 책을 사고 싶어도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두려웠는데, 온라인으로 책 주문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지금은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으며 그 작가의 책을 서너 권씩 사서 읽는다고 합니다. 읽은 느낌을 지인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의 삶을 확장하고 상상하는 자기를 만난다고 하더군요. 현실에 대한 시선을 문화와 예술 감각을 안내하는 잡지가 매우 도움이 된다면서.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지요. 아직 그곳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기회가 있는 것이겠지요. 살아가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지만, 경험하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누구에게 세심한 감성과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물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누군가의 말과 행동, 느낌으로 다가오는 즐거움에 반응하고 자기와 관계가 되는 시간을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자기의 경험이 다른 이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가거나 자기 생각 속에 묵혀두었던 경험이 부활한다면, 매우 환영할 만할 일일 겁니다.

어쩌면 처음 경험하는 일이나 내면에서 잊혔던 경험이 깨어나는 일은 언젠가 만나게 될 또 다른 자기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여행하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 처음 읽게 된 책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의 속성, 방을 벗어나 걷게 되는 산책길에서 듣게 되는 새소리들이 내 주변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묻어두었던 두려움을 거두어내고 다시 경험하게 되는 행동들, 예를 들면 수영이나 자전거, 악연이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다가감, 어색한 이와의 포옹이나 손잡는 일은 서툰 감정을 표현하는 용기가 아닐까요. 가끔 밤길을 걸으며 어느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의 빛나는 눈동자에서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도 하니까요.

양초 사용 방법을 몰라 어리둥절한 시골 사람들 모습에서 우리들 모습을 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방법이 가장 흔하듯이 요즘은 검색 기능이 있어서 편해졌지요. 만물박사 AI도 있고요. 물론 AI도 거짓말하고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도 있지만, 좋은 정보를 가늠하는 지혜를 배우게 되는 것이 세상이지요. 믿고 행하는 순수한 마음이 보기 좋게 어긋나기도 하지만, 잘못된 정보보다는 좋은 정보를 찾으려는 적극성이 매우 필요한 요즘 세상입니다.

허위사실 유포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모르는 글깨나 읽었다는 글방 선생이나 잘못된 정보를 믿고 양초로 국을 끓여 먹어 배가 아파 떼굴떼굴 굴렀던 시골 사람들이 혹시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전래 동화를 통해서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인생의 한 자락을 형성한다는 것을, 두고두고 우려먹을 이야깃거리 하나 자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수확인지를 알게 합니다.

다니던 길만 다니고 가보았던 장소만 가고 먹었던 음식만 먹는 그녀가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이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혹시 잘못된 판단으로 낭패를 보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경험하는 모든 일이 삶의 궤적을 확장할지 모르지요. 잡지에 나온 장소에 가보고, 책에서 만난 인물을 상상하고, 상상한 인물을 주변에서 찾아보고, 예술 작품에서 새로운 감정 만나고, 그 감성을 되새기고 기록하다 보면 기가 막힌 사연들이 어디에선가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귀신같은 사연들은 새로운 서사가 되어 인생 몇 자락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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