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백지

by 남쪽맑은물

고민이 깊었나 보다. 고등학교 삼 년보다 재수하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힘들다는 그녀의 전화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하다.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지금까지 애쓴 노력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허망해지려 해 전화를 했다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리무중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이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불안감. 그녀의 이야기는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는 앙상한 가로수 같다. 스무 살을 지나는 청춘의 목소리라기에는 세심한 관심이, 어쩌면 번역이 필요해 보인다.

-‘너의 결정을 존중해’라는 말이 듣고 싶었어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라는 틀 안에서, 보호라는 제도 안에서 내 일에 대해 내가 결정하는 순간을 목말라했지요. 아마 세상은 결정과 책임이라는 쌍두마차를 움직이는 바퀴와 같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마치 허구 같은 세상이 실화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어요. 모든 사물이 거꾸로 보이는 착시 현상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어요. 내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정말 대답을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어떤 대답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 어쩌면 대답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지도 모르겠고. 암튼, 나에게 학창 시절은 참으로 고단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흔들리는 모빌처럼 달랑달랑 눈앞에서 어른거릴 뿐,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거짓말 같았어요.

그녀는 대학생이 되면서 상황이 판이해졌다고 했다. 말 잘 듣는 세계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는 세계로 바로 이어져 있었고 그때마다 결정하는 일이 서툴다는 것을 알았다고. 더구나 결정하는 순간마다 자신이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 기준 흐릿해서. 아니 기준이 아예 없어서 망망했다며 말소리를 줄였다. 세상이 너무 모호해서, 난감해서, 황량해서, 무력해서, 겁이 났다고.

- 대학 졸업반인 내가 지금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라’는 말이에요. 이렇게 좋은 말이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적대감으로 느껴지기를 여러 번, 그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고요한 거예요. 나를 지켜주고 이끌어주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나만 외롭게 서 있는 기분. 외로운 마음에 화가 난 얼굴을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자주 봅니다. 참 흉악한 모습입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막막하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런 고민은 하고 산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버티면 지나간다, 세월이 가면 좋은 날이 온다면서 울울창창한 미래를 담보로 미욱한 현재를 위로한다면, 아직 젊으니 그녀에게 잠재해 있는 능력과 가능성으로 대기만성을 이룰지도 모른다고 말해준다면 고개를 끄덕일까. 위로가 될까. 해결이 될까.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그녀다. 그녀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게 될지,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전공한 것인지, 좋아서 전공한 것으로 먹고사는 일에 걱정은 없는지, 먹고사는 일은 고사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가 버겁다는 것이다. 재학시절 내내 고민했는데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억』(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에는 한 초등학생이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이 초등학생은 시험을 잘 못 보는 것이 고민이다. 그래서 백 점을 맞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마 초등학생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며 희망일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백 점을 맞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 편지 내용이다. 신기하게도 할아버지에게 답장이 온다. 자신에 대한 시험을 보면 백 점을 맞을 수 있다는 해결책이. 초등학생은 즐겁다. 자신에 대하여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흡족하다. 이 초등학생은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가 된다. 아이들 자신에 대해 시험을 보게 하는 선생, 매일 백 점 받는 학생. 선생과 학생은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단순하게 보일지 모르는 이 이야기가 누구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 되는 이야기다. 자기만큼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가 자기를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현실에서는.

그러나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도 고민이 있다. 할아버지의 답장이 고민 편지를 쓴 많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어쩌면 한심한 한 인간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비록 작은 잡화점이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성(城)이었던 만큼 편지를 쓴 사람들의 성을 무너트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걱정하고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장은 사실, 거대 담론이나 수려한 글이 아니라 하얀 백지다. 미래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내일은 하얀 백지에 쓰는 편지다.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되지만,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오늘이 내일이라는 것. 아마도 내일이라는 백지는 죽음으로써 사라질 것이다.

미래란 무엇일까. 미래란 도달할 수 있는 곳인가. 내일로 가면 그 내일은 오늘이 되고 또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일이라는 미래는 도달할 수 있는 곳도 정복할 수 있는 목적도 아니다. 그저 오늘 앞에 있는 것이 내일일 뿐이다. 내일을 기다리고, 또 내일을 기다리며 일생이 되는 것은 삶이다. 그저 기다림이 내일인 것이다.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내일을 기다리는 일이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기다리면서 애를 쓰고 기다리면서 에너지를 쓴다. 내일이라는 미래는 결국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이다. 미래는 그저 백지일 뿐이니까.


그녀에게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께 편지를 써보라고 이야기하련다. 동화 속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지만,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을까. 미래에서 온 편지를 받게 될 거라는 기대감은 꽤 큰 해답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할아버지도 미래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날 중, 미래를 만난 적은 없었을 테니까. 할아버지도 오늘만 살았을 뿐이니까.

할아버지가 어떤 답장을 보내줄지는 알 수 없지만, 절망스러운 오늘이 백지와 같은 내일을 향해 가는 것이기에 내일을 기다리는 일이 아주 멋진 일이라는 마음을 전하지 않을까. 마지막이 마지막이 되고 또 마지막이 마지막이 되면서 삶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마지막이 처음이 되는 것이 오늘이라는 하루가 지닌 특권이다. 기다림이란 지연되는 속성이 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이루어질 수도 있다. ‘때’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치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 모두 진리일 수는 없다. 더구나 경험치가 많다는 이유로 종종 강요를 동반한 확신에 찬 신념은 진리와 거리가 멀다.

그녀가 취업했는지, 대학원에 진학했는지는 알 수 없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웠던 오늘은 지났다. 또 다른 두려움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대학 졸업하는 오늘이 지났듯이, 내일을 기다리면서 오늘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오늘만큼의 고민과 더불어 즐거움도 함께 할 것이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면, 어떤 내용인지 무척 궁금하지만 기다려 보련다.

습기 제거된 목소리로 통화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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