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치레

by 남쪽맑은물

백억이 든 가방을 가지고 도망가려고 하는 한 남자의 위태위태한 하루를 그린 「라이어 3탄- 튀어」 연극이 있다. 라이어 1탄과 2탄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어 3탄을 감상하는데 어리벙벙한 부분이 있을까 망설였지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회사 말단 직원인 남자는 그의 생일날 합승한 택시 안에서 이미 타고 있던 상대방 가방과 자기 가방이 바뀌게 된다. 상대방 가방에는 현금과 다이아몬드가 들어있다. 남자는 욕심이 생긴다. 아내와 외국으로 도망가려는 남자와 자수하자며 이를 거부하는 아내. 사건의 실마리에 대한 냄새를 맡은 형사는 남자의 뒤를 밟고 남자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남자 친구 부부는 거짓말로 남자를 도와주려 한다. 그러나 이 거짓말이 상황을 점점 꼬이게 만든다. 더구나 바뀐 가방(남자 가방)을 가지고 간 야쿠자 운반책이 죽으면서 일은 더 꼬인다. 결국 야쿠자 보스가 남자 집에 찾아오면서 거짓말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이 연극은 거짓말에 거짓말이 더해져 묘한 상황을 연출한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거짓말을 기다리게 만드는 신기함이 있다. 자꾸 늘어나는 거짓말이 웃음을 제공하는 셈이다. 변비증에 걸린 것처럼 눌리고 쌓인 감정을 일시에 분출하고 배출하는 정신적 쾌감이 웃음이다. 예기치 못한 사태의 반전에서 웃음 빵 터지듯이, 연극에서도 뻔뻔한 거짓말이 참이 되고 참이 거짓말로 되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상황에서 관객은 웃음보따리는 터트린다. 거짓말은 참과 맞서는 말이지만, 웃음을 생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공연이다. 제작자는 4탄을 준비하고 있단다.

이 작품을 보면서 웃음 사이를 비집고 들어 오는 거짓말에 대한 본성을 생각한다. 불확실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말 같은 농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거짓말이 요구되는 현실이라면 괴물들의 괴변이다. 거짓말 같은 농담을 진담처럼 주고받는 것에 익숙하다면 문제다. 농담인 줄 알면서 진담으로 착각하는 착시현상을 유도하는 거짓말에 길들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목표가 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수고를 마다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보상이 미흡하거나 못마땅할 때, 가끔 거짓말 같은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았으면 좋겠다는 상상 같은.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말이라도 고맙다는 문장은 말이 삶을 윤택하고 풍성하게 한다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옛날부터 교훈을 목적으로 길든 정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 깊이 생각하면, 말이란 말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라면, 있는 사실보다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그 과장을 의식하면서 서로가 좋은 말에 공들이는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고한 인간관계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왕왕 거래되는 것이 듣기 좋은 말, 바로 귀치레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당나귀 귀치레하듯 한다’라는 속담처럼 쓸데없는 곳에 어울리지 않도록 장식하고 꾸미는 것에 익숙한 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지만. 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듣기 좋은 말을 하기 위해 적당한 말을 찾으려 한다.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의 반응이 긍정이든 착각이든 별 관심이 없으면서 말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자기 정체를 보일 궁리만 하는 빗나간 사고에서 생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응 없이 그대로 있는 순간이, 침묵하는 순간이 오히려 불편해져서 말을 찾고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솔직한 상태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무심한 것은 아니니까. 풍부한 표정이 있지 않은가. 반대로 듣기 좋은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괜찮았지만, 그 느낌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 일회용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답례로 상대방에게 해주어야 할 말을 염려해야 하며 그에 맞는 표정이 필요해지곤 한다. 이것은 엄청난 시간 낭비이며 상대방과 생각보다 가까워질 수 없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경청은 단순히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라는 어느 작가의 문장은 귀치레와 대비하는 말이다. 구부러지고 당의정을 입힌 말의 홍수 속에서 빈번하게 오역이 일어나는 말에 대한 피곤함을 느끼다 보니 자기에게 과감할 만큼 정직한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외모나 나이에 관한 대화보다는 그냥 ‘안녕하세요’라는 단순한 인사가 좋다. ‘예쁘네요’, ‘그 옷이 잘 어울려요’, ‘나이보다 젊어 보입니다’, ‘더 젊어지셨네요’라는 말보다는 '잘 있었어요?'라며 웃는 얼굴이 좋다. 타인의 척도에 적당히 맞추려는 말, 즉, 귀치레가 만남에서 어색함(ice breaking)을 줄일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지겨워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찾아서 하는 것이기에 정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이 귀치레다. 말의 허영이다. 허영은 필요 이상의 겉치레다. 겉치레는 발전이 없으며 이롭지도 않으며 진짜 세상으로부터 서로를 소외시키는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가끔, 칭찬하면서도 멍청하고 탐탁지 않는 표정을 짓는 이들을 보곤 하니까. 호의적인 외부 시선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표정에 솔직하다. 솔직함은 과분한 행운 같은 자기만족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는 사유가 깃든 표정과 연결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두 번째 별에서 허영심이 가득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잘생겼고, 멋있는 옷을 입었으며, 부자면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기 원한다. 왕자는 그 남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왕자는 남자가 계속 요구하는 말의 허영이 이해되지 않아 그 별을 떠나고 만다. 결국 허영심 많은 남자는 왕자와 소통할 수 없었다. ‘어른들이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곳을 떠난 어린 왕자는 정직함이란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듣기 좋은 말에만 의지하며 주고받는 감정 표현이 어린 왕자에게는 무의미해 보였음은 틀림없다.

연극 「라이어 3탄」에서 관객들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거짓말에 속는 배우들을 보면서 웃는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다음 장면을 기다린다. 언제 거짓말이 들통이 날까, 들통이 난다면 그들의 행동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달라진 말과 행동에는 어떤 의미이며, 어떤 장면에서 그들이 하는 말에 공감할 수 있으며, 그들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지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현실이 아닌 연극에서는 거짓말이 농담처럼 웃음을 자아내지만, 막이 내리는 순간, 허구는 사라지고 거짓말 같은 현실이 홀로 남는다. 현실로 돌아온 관객은 웃음을 자아냈던 거짓말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영이었음을 고백한다. 고백은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사유의 결과이니 과장 없는 말이겠다.

다른 이에게 웃음을 주는 인생이 가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등이 오싹해지는 일이다. 귀치레 가득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지만, 거짓말이 될 가능성은 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냐며 비난하는 이도 있을 테지만, 굳이 가볍게 응수하자면, 웃음을 유발하고자 하는 말의 허영은 코웃음이 될 여지가 있다. 오히려 무언이 기교 없는 감정 표현이 아닐까,라는 역설을 끌어들이게 한다.

자기 삶에서 누구나 바보 같은 배우가 될 수 있다. 연극 같은 인생에서 자기의 대사가 허영으로 포장된 거짓말과 비슷해질 수 있다. 정말 그럴지 걱정이 된다면, 자기를 위해 종종 약속해야 할 것이다. 농담으로 하는 거짓말이라도 하지 않겠다고. 농담이 아닐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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