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치

by 남쪽맑은물

인간의 삶을 가동하는 힘 중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을 위해 그 무엇을 비축하고자 하는 욕망이 한몫한다. 냉장고를 채운 내용물이 없다면, 이 침침한 피로 시대를 잘 지낼 수 없으리라. 그러다 냉장고에 가득한 내용물을 보고는 지나친 소비를 반성하곤 한다. 한동안 ‘냉장고 파먹기’로 다소 지나친 소비에 대한 무안함을 달랜다. 먹이를 비축하는 행위는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종종 가속도가 붙는다. 혹시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남는다고 해도 차곡차곡 쌓아둔 비상식량이나 보관이 잘되는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다면, 그나마 덜 불안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소비의 노예인 동시에 소비를 배척하는 모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막무가내식 소비로 인한 환경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소박한 사치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손을 거치는 재화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인연이 되어 우리와 온기를 나누게 되었는지를 추론하게 되면, 이 재화를 허투루 소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만들어지는 재화 중, 매일 소비하는 식량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은 환경과 밀접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소비가 좀 더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인지를 질문한다. 절약과 생산 구조에 따른 현대사회의 죄의식에 물든 문화보다는, 강박에 가까운 검소한 생활 방식과는 조금 다른, 좀 더 자유로운 소비에 대해 고민한다. 고민하는 시간을 길었으나, 그 결과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양심이 가책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 즉, 쓰레기에 대한 예의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의 종류와 숫자와 무게는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종류와 숫자와 삶의 무게를 소멸하니까.


환경 문제 중,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덜 만들 수 있을지를, 그중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생각을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음식물을 남기지 맙시다’라는 구호를 실천한다.

일상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존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먹거리에 관심이 없다면, 아마도 죽은 목숨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남으면 그냥 쓰레기가 된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소중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쓰레기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재능 있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어도 남으면 쓰레기다. 그래서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는 세심한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에 적당하게 소비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생각에서다. 음식점에서 남은 음식을 담아 올 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이들을 누가 뒷말로 혀를 차겠는가. 자잘하게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결코 자잘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알맞게 요리해서 먹는다. 남기지 않으려면 적당한 양을 가늠해야 한다. 남는 음식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먹는다. 내 가난한 유년에는 한정된 음식을 형제들과 나누어 먹었기에 남은 음식이 별로 없었지만, 좀 살만해진 시절에는 음식을 많이 했고 남은 음식은 버렸다. 음식이 남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남은 음식을 나누어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마음을, 그럼에도 남은 음식을 버릴 수 있는 삶을 뽐내고 싶은 허영이 그득했다. 음식으로 궁색하지 않은 삶이 대견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기지 않을 만큼 만들어 먹거나 남은 음식을 잘 보관해서 먹는다. 쓰레기는 기꺼이 재화에 지불한 행위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소비는 살아있는 자들의 문화이며 판단 행위다. 소비는 익명이 개인에게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드러내게 한다. 그 누구도, 개인이 탐하는 소비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기꺼이 개인 취향에 따른 소비에 지급하는 노력을 깎아내릴 근거도 없다. 소비에서 오는 짜릿한 희열에 값을 매길 수 없다. 소비에 대한 반짝거리는 매혹을 차별할 수 없다. 소비하는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며 자기가 향유하는 문화의 심미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개인이 누리는 소비 향락에 대해 비난할 자격이 누구에게도 없다.

이처럼, 소비는 생존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치로 활랑거리는 욕망을 부추긴다. 욕망과 사치의 컬래버는 어디쯤에서 목표를 달성하게 될까. 어쨌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상관없이, 쓰레기로 귀결되는 심미적 소비 행위가 사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논리는 헛소리는 아닌 듯하다.


지금도 냉장고는 잔잔잔, 잘 돌아간다. 인간 생존을 위한 먹거리가 가득한 ‘에너지효율소비1등급’ 냉장고라고 해서 환경에 무해한 것은 아니다. 인간 존재 자체가 환경에 민폐가 되는 현실에서 쓰레기를 덜 만드는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임은 틀림없다. 지구인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쓰레기에 대한 문제를 그냥 허망하게 바라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구인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솔직한 실천이야말로 문화 지구인으로 사는 유일한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구에서 누리는 조용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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