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아비투스(habitus)

by 남쪽맑은물

흥건해진 바닥을 화장지로 덮는다.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는 기름종이처럼 하얀 화장지는 빠르게 커피를 흡수하고 있다. 그러나 엎질러진 커피 양이 생각보다 많은지, 제 색깔을 잃어버리고 갈색으로 변하는 화장지는 켜켜이 쌓여간다. 테이블 아래, 바닥에 떨어진 액체를 닦는 동안 바이올린 연주는 계속되고 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있을 것이다. 테이블 아래에서 고개를 처박고 바닥을 닦고 있는 그녀를 오히려 측은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꽤 이타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을지도. 공연에 방해되지 않도록 예기치 않은 소란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그녀의 행동이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주변인들이 그녀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볼 수 없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화장지로 바닥을 닦고 있다. 파가니니의 소나타 연주를 들으며 그녀는 바닥에 등을 구부리고 있다.


시에서 수요일마다 브런치 콘서트를 한다. 음식물 반입이 금지된 일반 공연과 달리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 마시며 실내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이다. 시민들이 커피 한 잔과 음악이 있는 곳에서 오전 시간을 즐기도록 마련한 문화 프로그램이다. 같은 시간에 일터에 나가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호사가 따로 없겠지만 문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공연이다.

바이올린 독주에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원탁 테이블에 있던 커피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일어서 나가려다가 가방으로 그녀의 커피를 밀어버린 것. 공연 도중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돌발 상황은 감상에 빠져 있던 그녀를 엉망으로 만든다. 아주머니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도 도망치듯 나가버린다. 이 엄청난 일을 그녀에게 떠넘기고 가버리는 아주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 누가 아주머니를 쫓아가서 이렇게 그냥 가면 어떻게 하냐고 따질 수 있겠는가. 바이올린 연주는 계속되고, 쏟아진 커피는 바닥에 흐르고, 주변인들은 그녀를 쳐다보고.

그녀는 드라마 ‘모래시계’에 삽입된 ‘소나타 제12번 마단조 작품 3’을 감상하는 일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 또한 훌륭한 연주회를 망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상황은 여유로운 것이 아니다. 수습하는 일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고 감정을 추스르는 일도 그녀의 일이다. 이렇게 묘한 상황이 그녀를 테이블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밀어 넣게 만든다.

테이블에서 떨어지고 있는 커피는 갈색 액체로 전락한다. 눈 화장을 짙게 한 삼류 여배우의 눈물처럼, 공장에서 내뿜고 있는 폐수처럼, 인간의 보이지 않는 내면에 흐르고 있는 이기적인 마음처럼 액체가 공연장 바닥에서 방황하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커피는 이미 커피가 아니며 오물일 뿐이다. 그 갈색 물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흐르다가 머뭇거린다. 그러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중년 여인 밤색 부츠에 머문다. 그녀는 부츠가 젖지 않도록 발을 치우며 자리를 고쳐 앉는다. 꼰 다리를 바꾸며 몸의 방향도 틀어버린다. 커피가 흐르다 멈춘 곳까지 따라가 화장지로 닦으니 어느새 파가니니의 소나타 연주가 끝난다. 박수 소리와 함께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연주할 곡을 소개한다.

그녀는 테이블에서 고개를 빼내고 구부렸던 몸을 곧추세워 자리에 앉는다. 젖은 화장지 뭉치가 발아래에 배설물처럼 쌓여 있다. 화가 난 그녀의 얼굴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짜증으로 수그러들지 않은 오돌토돌한 마음은 고른 숨 틈을 찾고 있다. 생각할수록 신경질 난 마음이 고개를 들다가 숙이기를 여러 번. 어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는지, 얼굴이라도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잘나고 못난 생각을 교차하면서, 마음을 추스른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마지막 곡이 연주된다. 그녀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연주를 듣는다. 피아노 반주와 함께 바이올리니스트는 짐발리스트의 탱고를 연주하고 있다. 그때, 탱고 가락에 박자라도 맞추듯이 휴대전화에서 진동음이 울린다. 발신자 이름을 보니 다른 약속을 잊고 있었음을 일깨워 준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으니 연주회나 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약속 장소로 가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을 잊어버린 것.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가 화장지 더미를 처리하고 나오기에는 다른 이들을 방해하는 일이기도 하고, 시간이 급하기도 해서 바로 약속 장소로 향한다.

화장실에 배설물을 그대로 두고 나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다양한 여러 상황에 나 스스로를 적응하는 습관처럼, 있는 대로 외양을 가꾸고 반반한 표정으로 공연을 보던 그녀의 내면은 바닥에 뭉쳐 있는 화장지 덩어리처럼 우스꽝스러움으로 꿈틀대고 있다. 규범을 파악하고 숙지하는 내면과 외면의 표리부동을 붙안고 있는 사람 중, 그녀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과 화장지 뭉치가 머릿속에서 계속 불어나는 상상을 흩뜨리지 못하는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방관하는 태도를 어디까지 수용할지, 그다음은 어떻게 행동할지,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유지할지를 차분히 지켜보는 우아함은, 고상하고 기품 있고 아름답고 넉넉하고 바름을 아우르는 우아함은 태도의 연출 효과다. 우아함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는 절대로 유지할 수 없다. 서로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는 자아 분열은 제2의 본성 같은, 집단에 속한 인간 군상의 이면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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