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렁주렁 웃음이

by 남쪽맑은물

이중섭 화가는 소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게와 물고기, 새와 복숭아 등등으로 화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감성 중,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중에서 어린아이와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복숭아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이는 계절과 장소에 상관없이 재미있게 논다. 바닷가에서 게와 놀고, 과수원에서 복숭아와 논다. 특히 복숭아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표정에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유대감이 풍부하다. 아이들 엉덩이가 복숭아 같고 아이들 웃는 얼굴이 복숭아 같다. 이중섭에게 복숭아는 어떤 의미였을까.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던 화가는 복숭아를 만물이 살아나는 생명력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는 과정에서 무병장수한 삶을 꿈꾸는 것. 몸이 건강하지 못했고,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화가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애정이 짙게 드리운 화가 작품 앞에서 침식과 퇴적으로 쌓인 다층으로 쌓인 그리움을 만난다. ‘그립다’는 말 언저리에서 꼬무락대는 다양한 감성을 아이와 복숭아로 표현한 화가 마음을 알 것 같다.

이중섭이 천도복숭아를 그려서 몸이 아픈 시인, 구상에게 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무병장수 이미지, 복숭아 그림을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에게 선물했던 화가 마음은 우정이다. 호감과 비슷한 우정은 아끼는 대상에게 최선으로 표현하는 좋은 감정이다. 복숭아 살 돈이 없는 현실이지만, 두고두고 볼 수 있는 복숭아 그림을 그려준 이중섭 마음을 구상은 경청한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 있고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이 있지 않은가. 소중한 것은 소중한 것으로 기억하는 것도 소중한 마음만이 가능하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웃음 같은 마음이 화가 이중섭과 시인 구상에게는 복숭아였을 것이다. 맑고 빛나는 아이들 같은 영혼을 간직하고 싶었던 화가의 순수한 마음이 피가 통하는 혈연처럼, 가족 같은 시인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한한 애정에서 시작된다. 유물론이라는 거창한 이념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과 함께 하는 만물을 인연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만물 중에서 과일, 과일 중에서 이미지로 각인된 복숭아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복숭아를 생각하면 더운 여름을 단맛으로 가득 채운다. 더구나 건강한 삶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복숭아에 대한 추억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과수원집 딸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복숭아를 재배했는데, 상품 가치가 떨어지지만 맛이 좋은 복숭아를 지인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그녀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농사짓는 일이 늘 걱정이었다. 손길이 필요한 계절이 되면, 주말마다 과수원에 갔다. 도시에 살고 있었기에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과수원에 가는 날을 즐거워했다. 먹기에 맞춤한 복숭아를 자동차에 가득 싣고, 도시로 오는 날은 즐거웠다. 특히 복숭아는 택배로 보내기에는 마뜩잖은 과일이어서 지인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팔기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부모님이 연로했기에 매번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부모님 과수원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후, 과수원을 팔았지만, 과수원집 딸이라는 그녀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전해주는 복숭아를 나의 엄마는 무척 좋아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복숭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복숭아를 가지고 오면, 그녀의 부모님 안부를 물었고, 그녀의 부모님이 여전하다는 대답을 듣고 안도했다. 낙과도 과일이라면서 흠집 난 복숭아를 정성스럽게 닦아 맛있게 드셨다. 입술에 남아 있는 과즙을 화장지로 닦을 때, 과즙이 소리 없이 화장지로 스며드는 것처럼 엄마는 스르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려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물려주고 싶은 웃음, 엄마 마음 넓이만큼 넉넉한 웃음은 복숭아가 아주 맛있다는 표현이었다. 꺼끌꺼끌한 껍질을 벗기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알맹이 맛을 느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 그 표정에는 그녀의 부모님 대한 존경이 담겨있었다. 땅에서 생명을 일구는 사람을 향한 존귀함 같은 것. 고향을 띄엄띄엄, 촘촘하게 그리워하던 엄마는 그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돌아가셨다.


그녀는 암 치료 중이었기에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자기가 잘 견디고 있는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가 사는 도시에서 과수원까지는 100km다. 그 거리를 오갔던 시간을 화양연화라고 말한다. 복숭아를 수확하는 시기는 다른 과일에 비해 한정적이고 보관하기 어려우므로 그는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복숭아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 가득 담으며, 복숭아 같이 달콤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삶을 생각했다. 복숭아를 언제까지 나눌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향기로운 과일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양양히 만족했다. 아기가 있는 힘껏 잠을 자듯이, 있는 힘껏 복숭아를 따서 함께 먹었던 사람들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녀는 여전히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암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마주 보면서 위로하며 지내고 있다. 좋아질 수 있고 더 나빠질 수 있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도 중요하고 살아 있다는 감각도 중요하다. 얼마의 희망과 얼마의 절망으로 그녀가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 어떤 노력이나 희생을 해야만 살아지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죽어가면서 살아있는 존재로 살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니.

한 사람의 생은 누군가와 함께 죽음으로 향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도 혼자가 아니다. 서로가 도움인지도 모르게 서로서로 도움이 된다. 인생에서 복숭아는 후덕한 무병장수의 의미와 더불어 용케 살아가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내는 존경과 감사다.

복숭아라고 발음하기만 해도 단물이 올라온다. 복숭아를 보는 것만으로 수분 가득한 촉촉함이 느껴진다. 물렁물렁한 복숭아에 손가락 자욱이 나면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우윳빛처럼 불투명한 복숭아색에서 요구르트 맛을 떠올리게 되면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옅어진다. 복숭아 붉은빛은 그러데이션으로 번지는 노을 같다. 복숭아털이 물에 씻겨 내려가면, 연이어 떠오르는 기억에서 떨어지지 않는 여러 생각 중 불편한 마음이 사라진다.

복숭아를 보면 이중섭의 아이들이 생각나듯이 내 곁에 존재하는 이들이 생각난다. 복숭아는 다양한 층과 겹으로 연결되는 감정이다. 과수원에 주렁주렁 열린 복숭아나무를 보고 환하게 웃었던 그녀의 부모님과 복숭아를 드시며 탐스러운 웃음을 지었던 나의 엄마, 복숭아를 나누어주던 마음으로 암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 이중섭 화가가 그린 복숭아를 보노라면, 마치 흥얼흥얼 새어 나오는 악보 없는 연주처럼, 즉흥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소리가 시나위인 것처럼, 그리운 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듯하다. 복숭아는 웃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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