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라는 것은 생명의 향연. 이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면 그 비슷한 것이 아닐까. 어떤 대상에 대한 개별적인 반응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삶이고 그렇게 표현하는 감정은 살아 숨 쉬는 순간마다 생성한다. 느낌은 지극히 개인의 것이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반응은 매우 일상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우연히 일어나며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드러난다. 일정하지 않고 분명하지 않은 내밀성이 있으며 의식하지 않은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독백과 같다.
우리의 삶은 각자가 느끼는 감정, 즉 마음의 흔적과 모든 느낌을 백 가지도 넘는 색과 향, 그리고 형태로 채워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느낌이라는 것이 과잉된 감정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자기감정에 대한 과잉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좋고 아름다운 감정이 부끄러운 거라면? 더 나아가 자연스러운 감정 자체가 문제라 한다면?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을 경멸한다면? 별처럼 반짝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감정절제모드가 오작동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그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므로 금지해야 할 규칙이라면? 종종 감정의 완급조절이 어려워 고민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불법을 자행하는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정말, 감정의 과잉이란 무엇일까.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복잡한 감정 세계가 어려워 이성만이 존재하는 상황을 상상한 적이 있다. ‘로맨틱한 사랑이란 거짓말에 불과한 현대가 가진 속성이 드러낸 미신이고 속임수일 뿐’이라는 어느 영화 대사를 보면, 사랑에 빠진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미신이든 조작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빠지지를 원한다. 욕망하는 사랑이 없다면, 평생 간직할 추억 하나 만들지 못하게 되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사랑을 원할까. 그것은 비극으로 끝난다 해도 사랑하면 죽을 만큼 좋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이퀄스(Equals)」를 보고 덜컥 겁이 났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로 생각했던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상상만 했던 일이, 설마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겠는가, 라는 생각이 무참히 짓밟혔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기시감으로 다가와 오싹하기까지 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심각하게 나쁜 감정이고 감정통제오류여서 강제적으로 격리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규정하는 세상에 산다면 어떨까. 사랑이 감기나 암처럼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기에 전염성은 없지만 서로 만지거나 포옹 같은 신체접촉을 거부하는 것을 규칙으로 하는 세상 말이다. 감기나 암은 이미 치료제가 있어 치료가 가능하지만 감정 중에서도 가장 큰 혼란을 가져온다고 판단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없애는 치료제가 나온다면, 그래서 사랑을 할 수 없다면…. 더구나 그 사랑이 인류 질서를 위협하는 질병이기에 서로 사랑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는 세상이 있다면 말이다.
느낌이나 감정은 동등하거나 평등할 수 없다. 공감할 뿐, 수치상 일직선상에 그어져 있는 막대그래프처럼 계산이 되는 영역은 아니다. 그런데 느낌이 위험의 대상이 되고 격리의 대상이 된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라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지는 공장의 기계처럼, 생산성을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은 삭제되어야 하는 오류이며 오류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개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치료 대상이 된다면, 사랑이 철저히 봉쇄당한다면, 우리는 어쩌나. 서로 사랑하고 서로 좋아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끔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축적된 감정이 산더미처럼 밀려올 때, 눈물이 난다. 눈물은 감정의 결정체다. 눈물은 삶의 빈자리를 남기고 떠난 자에게 보이는 마음이며, 삶을 함께하는 사람을 포옹하는 감정이다. 사랑이 그리울 때 어김없이 슴벅이는 숨소리에 눈물이 나곤 할 때, 다른 생명의 포근한 품을 생각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포옹은 유대감을 만드는 과정으로 불안을 없애려는 행위라고 단언하고, 사랑은 감정행동장애의 발현이기에 위험하다고, 영화 「이퀄스(Equals)」에서 말한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감정이며 감정은 질병이니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치료제일 뿐 포옹은 속임수이며 감정 절제의 위험 요소라는 것이다. 포옹을 마약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 세상이 「이퀄스(Equals)」다. 그래야 누구나 평등한 일상과 평등한 생산성으로 선진국에서 살 수 있는 것이고 똑같이 분배된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군상이 되는 「이퀄스(Equals)」의 세계다. 우리의 감정도 평등해야 이지적인 세상을 만들며 이지적인 세상에서는 언제가 사라질 감정에 낭비하는 삶은 필요 없다. 그래서 다양한 감정을 제거하는 연구에 몰두하는 일에 동참하며 깨끗하고 정돈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최상의 삶이라는 메시지가 영화 「이퀄스(Equals)」다.
깨끗하고 이지적이지만 감정이 없는, 아니,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남자(사일러스)와 한 여자(니아)는 변화를 감지한다. 두 사람이 느끼는 이상한 감정을.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감정은 없는 것이 아니라 통제된 것임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만지고 포옹하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두렵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이 좋은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와 남자는 사랑을 포기할 수가 없어 두려움을 포기한다. 선진국(?)의 삶을 담보로 하는 두려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 나쁜 감정이 아니고 더구나 질병이 아닌 곳을 찾아 탈출하게 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 여기서 영화는 끝나지만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상상하는 것은 끝나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느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에 억압이 없다. 좋아서 포옹하고 사랑해서, 미안해서, 고마워서, 추워서, 외로워서 맘껏 포옹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서로 안아주는 일, 포옹이 자유로운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가슴속 속삭임의 또 다른 형태인 포옹이 SOS(Save Our Souls)가 아닌 (Switched on Syndrome, 감정통제오류증상)라 일컬어지는 세상이 온다면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리라. 삶의 중심에 있는 좋은 감정을 맘껏 표현하는 몸의 언어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장애물이라도, 장애물을 없애기 위한 열정으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사람의 몸은 참 따뜻해 / 7초간 포옹했을 뿐인데 / 비 그친 후의 태양처럼 향기롭지 // 사람끼리 닿으면 참 많은 것을 낫게 해 / 상처가 낫고 슬픔이 가라앉고 / 외로운 눈동자가 달콤한 이슬비에 젖지 // 닿고 싶어, 낫고 싶어 / 온통 기쁨을 낳고 싶어 / 당신과의 / 가슴 뭉클한 // 7초간 포옹
(『7초간 포옹』 신현림,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