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한 다발

『마흔에 읽은 쇼펜하우어』(강용수, 유노북스, 2024)

by 남쪽맑은물

영화 「머티리얼리스트」(셀린 송, 2025)는 결혼에 관한 이야기다. 인종, 나이, 용모, 재산, 학력, 몸매, 정치적 성향은 결혼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이 기준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결혼정보 회사의 유능한 커플 매니저인 루시는 그녀가 성사한 화려한 결혼 피로연에서 뉴욕에서 1.200만 불짜리 아파트에 사는 해리를 만난다. 거부에 고학력, 세련된 매너, 잘생긴 용모, 183cm 키의 해리. 킹카를 넘어 유니콘 급의 해리가 루시에게 접근한다. 예리한 판단력과 설득력을 작동해 이 남자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결론을 내린 루시는 해리와 교제한다. 그런데 뭔가 불안하다.

루시에게는 헤어졌지만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애인 존이 있다. 존과 헤어진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연극배우 존을 빈털터리라고 세상 사람이 이야기한다 해도 자기가 사랑하는 존이 빈털터리는 아님을 루시는 안다. 그런데 구질구질한 현실이 싫다. 그렇게 존을 떠난 루시. 그러나 루시가 떠난 것이 자기 탓이기만 존. 루시는 존이 가난한 것이 존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유니콘급 해리와 지질해 보이는 존 사이에서 사랑까지도 집어삼키는 이 시대의 위태위태한 긴장 상태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생각한다.

셀린 송 감독은 자본주의에 매달리는 사랑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부유함이 이 시대의 마약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마흔에 읽은 쇼펜하우어』는 다양한 측면에서 공감하는 문장이 많다. 특히 성인이 되면서 가장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결혼제도에 대해서 사유가 깊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자기를 구성하는 의지에 위기를 느끼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을 탐구한다. 특히 그의 철학 기본 의식인, 고통과 권태에 대한 문장이 눈길을 끈다. 인생은 고통이며 권태를 동반해 진자처럼 서로를 오간다고 말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결혼도 기대가 크면 불행하다는 것, 결혼은 공동의 실존이라는 것, 오히려 결혼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의 반복이라는 문장에 공감한다. (157쪽) 그럼에도 슬픔과 환희, 고통과 즐거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무한한 감동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행복이다. 행복은 고통이 없는 순간이며 고통의 원인을 줄이는 삶이 행복이다. 고통에는 민감하면서 쾌락에는 당연성을 주장한다면, 결혼은 타인과의 연대로 쾌락을 동반한 위험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 결혼이 오히려 기피하는 제도가 된다면, 결혼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결혼에 대한 관념이 요동치는 변화는 그의 철학과 연관성이 깊어 보인다.

행복한 인생에 대한 청사진이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행복을 평가하는 기준이 성공과 부, 성취와 출세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각이 점점 낯설어진다. 행복과 불행의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표상하는 것,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미지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는 사회 현상이 두렵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이 필요한데, 이 힘이 항상 옳은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비교하는 심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심리 미약도 마찬가지다. 내면에 어떤 힘을 길러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기가 마흔쯤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철학자인 그가 마흔이라는 나이에 천착한 이유는 세상이 상당히 복잡한 우주라는 것을 어는 정도 알 만한 나이가 마흔이며 그중 결혼제도와 무관하지 않은 나이가 마흔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은 종족 보존이라는 목적에 의해 쓰이는 시나리오라는 그의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자기 보존 욕망으로 결혼이라는 사회 계약에 서명하고 무한한 삶을 보증하는 안도감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존재에 대한 불안을 극복한다. 자식으로 자기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환상 뒤에 감추어진 욕망 실현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종족에 대한 욕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종족을 보존하는 목적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사랑은 현실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환상의 옷을 입고 나타난 형체는 금방 사라진다. 더구나 자본의 옷을 입은 사랑은 허깨비나 환영, 아니면 허영이다. 사랑은 그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 소유욕이 극심해지면, 질투심과 증오심으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물론, 사랑에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면, 행복한 감상은 착각에 불과한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한다고 다 결혼하지 않는다. 태어나면 죽음이 기다리는 것처럼, 결혼은 꼭 해야 할 운명이 아니다. 오죽하면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결혼은 속임수이며 아주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인간이 서로 결합하여 사랑하도록 우리 마음에 심어 둔 자연의 계략자”라고 하지 않는가. (159쪽)

그럼에도 불완전한 인간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한다. 모든 연애는 생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결혼이 부자들만의 특권처럼 보이는 이상한 현실에서 사랑은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랑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 사랑을 통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같을 수 없다. 인생이 고통과 권태를 오가기만 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고통과 권태가 없는 삶은 없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악마에게 의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랑에 의존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결혼을 상상한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의 첫 장면은 인류의 첫 결혼식이다. 두 남녀는 인종, 나이, 용모, 재산, 학력, 몸매,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사랑하고 결혼했다. 그들이 사랑을 고백하고 나눌 때, 들꽃 한 다발이면 족했고 손톱 끝 까맣게 때가 낀 손가락으로 서로를 만지는 느낌으로 충분했으며, 눈을 감고 입을 맞추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

부유한 사람의 전유물이 되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진정한 사랑을 모은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가난으로 붕괴되지 않는 사랑을 곱씹는다. 사랑은 공짜이며 자유라는 말을 퍼트린다. 사랑이 자본의 그 어떤 것에도 잠식되지 않는 인간만의 영역임을 확대한다. 모험과 의문부호로 가득한 사랑을 열렬히 갈망한다. 두툼한 외투로 추위를 이기듯이 혹독한 현실을 사랑으로 감싸면서 견딘다.

삶의 진정한 목적을 찾으려면,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홀로 한 뭉치의 고독을 견디고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사랑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니. 혼자서 자기를 견딜 힘이 없으면 사랑하는 일도 버거운 일로 변질하기 쉽다.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를 위해서는 서로에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랑도 부패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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