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허태연 글, 다산책방, 2021)
육십 후반에 플라멩코를 배우는 굴착기 기사가 있다. 굴착기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남은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 그는 자신과 대화하고자 오랫동안 ‘청년일지’를 써왔다. 다짐하거나 새로워지려는 마음이 너무 거창하다면 그냥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 썼던 ‘청년일지’에 요즘 새롭게 첨가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잃어버린 딸, 보연이를 찾는 것. 손이 베일 듯 내리꽂히는 햇빛에 곤두박질치는 일이 있더라도 침침한 마음을 찬란한 햇빛에 드러내는 일은, 끌림이라는 인간 속성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며 어쩌면 잃어버린 것이 아닌 버린 딸을 찾아 속죄하고픈 용기 같은 것이다. 그러다 삶에서 가장 큰 적이었던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만나는데…. 허태연 작가의 『플라멩코 추는 남자』에 나오는 허남훈 씨 이야기다.
징그럽게 마음을 짓누르는 돌덩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곁에 두는 삶을 종종 본다. 마음이 없어서도 아니고 더구나 잊어버렸기에 그런 것은 아닌데 해결하지 못하고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잔기침 나게 하는 일이 그렇다. 옆구리 쑤시듯,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통증이 울리는 그런 일. 남훈 씨에게 보연이가 그렇다. 철없던 젊은 날, 보연이와 전처를 두고 방황했던 기억은 되돌리고 싶지 않은 과거다. 알코올 중독으로 죽음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그에게 새로운 삶을 함께 한 것이 ‘청년일지’다.
‘청년일지’를 쓰면서 중독으로 마비된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이 행동이 되어 새로운 삶의 인연을 만난다. 지금의 아내와 재혼한 그는 여느 가장처럼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보연의 존재는 항상 자신을 비겁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그 사실이 그를 거칠게 했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짜증을 부리다 그 짜증이 타인에게 불똥이 튀듯이 말이다. 죽을 고비도 넘겨봤고 결혼 실패도 해봤기에 두 번째 결혼생활은 별 나무랄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다행히 가족은 화목하고 열심히 일한 결과 경제적으로 남에게 손 벌릴 정도는 아니니 이 정도면 좋겠다 싶어 퇴직을 결정하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도 많아진다. 밀쳐두었던 미진한 삶에 대한 강한 회한이 넘실댄다. 공중에 흩어진 철없던 날들이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 수북이 쌓인다. 더구나 보연이를 생각하는 시간은 더욱 괴롭다. 괴로움은 책임을 회피했던 자기에 대한 모멸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더 이상 비겁할 수 없는 남훈 씨. 이런 고뇌의 시간에 잔기침이 나는 용기를 부여잡는다.
드디어 전처의 딸, 보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익숙한 장애물을 걷어낸다.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던 자신의 미흡한 감정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거쳐 행동한다. 보연을 찾아 나서는 발길이 무거웠지만, 딸을 찾아 아버지가 되는 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더 이상 미루지 않는다. 심신이 쇠약했던 지난날의 열패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임의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 회피하고 외면하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 어쩌면 생의 절정인지도 모르니까. 보연이를 찾는 일이 생의 클라이맥스일지도 모르니까. 그는 더 이상, 놓칠 수 없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비겁하지 않으려 애쓴다. 결국, 보연이를 찾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 끌어안은 무릎을 편다.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사람 관계에서 그 실타래를 잘 풀어서 동그란 실뭉치로 만드는 것이 삶이다. 그 실뭉치는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갈 가능성이다. 그러나 실타래를 풀어가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실을 잡아주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엉킨 실을 풀 수 있다. 엉킴을 푸는 시간에 대화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실의 섬세함과 강도, 실의 탄력과 엉킴의 방향 등등이 세밀한 눈길과 손길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음식이 익어가는 도중에 칙칙거리는 압력솥 증기가 위험한 것처럼, 실타래를 풀면서 화를 내거나 성질대로 해서는 더 엉킬 뿐이다. 이처럼 관계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행동이 필요하다. 행동하는 용기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 그 순간이 가장 자기 다운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것이 실뭉치의 힘이다. 뒤엉킨 삶일지라도 절대로 무신경할 수 없는 운명처럼 말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다가 실이 끊어지는 일이 일어난다. 다시 시작하려 실 끝을 찾다가 시간을 허비하거나 결국 그 끝을 찾지 못해 망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다양한 삽화를 생각하다 절망하기도 하고 더 망가질 관계를 상상하다 주저앉는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 순간이 적절한 때가 아닐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 본성이며 무언가가 첨가하지 않은 순수함이다. 실을 붙잡아 준 이의 응원이 있다면 끊어진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생의 이면을 보면 비밀스러운 가족사가 만화경처럼 펼쳐있다. 전쟁으로 가족이 생이별했던 시대가 있고 경제 파탄으로 각자도생의 길로 가족이 헤어지기도 하고 인권 추락으로 가족 파멸을 야기하기도 한다. 성정체성으로 가족 곁을 떠나야 했던 이들도 있고 물질만능주의 시대가 낳은 가족 해체가 있다. 대학입시의 병리 현상으로 조기유학이 가져온 기러기 시대가 있고 일자리로 인해 주말만 만나는 가족에게서 느껴지는 관계의 소원함이 있다. 아마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된장찌개 먹으며 즐거워하는 가족 풍경은 사진이나 영상에서 만나게 되는 다큐멘터리로 존재할 날이 멀지 않았는지 모른다.
잘하려 해도 잘되지 않은 관계의 엉클어짐은 누구에게나 비켜갈 수 없는 숙제다. 특히 가족 관계는 더욱 미세하다. ‘너무 잘 알아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몰라도 너무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다. 가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관계가 엉클어진 가족은 많이 있다. 그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삶의 근원이다. 용기가 행동으로 이어져 비록 자기만 비굴하게 속으로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청년일지’를 덮어두고 음악을 듣고 있을 허남훈 씨. 창고 같은 서재에 앉아 눈을 감고 굴착기를 팔까 말까, 고민하는 남훈 씨. 늦었지만, 놀라고 마음 다친 보연이를 돌보아줄 아버지가 되려는 남훈 씨. 부족했던 날들이 자화상이지만, 자기 얼굴에서 지혜를 배우고 용기를 만난다. 실패한 경험이 실패의 의미가 되는 것처럼, 개미의 행렬처럼 즐비한 관계 중, 미숙했던 사람이 미숙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희망도 절망도 아닌, 마음 한 자락에 걸어 둔 실뭉치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미완성의 삶이 아닐까.
남훈 씨와 보연은 스페인 여행을 한다. 그들이 함께하는 여행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한 마음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여행에서 스페인 음식을 알게 되듯이 삼십사 년 전에 헤어진 보연이지만 보연을 알아 간다. 딸의 슬픔과 절망과 희망을 가까이에서 느낀다. 다시는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것이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이며 그 마음을 딸에게 전한다. 철이 든다는 것은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것이며 그러다 괜찮은 사람이 되는 일일 것이다.
중절모를 쓰고 멋진 정장을 입고 붉은 행커치프를 꽃은 채 춤추는(255쪽) 남훈 씨를 상상한다. 그의 탭 소리가 스페인 광장에 하늘하늘 울려 퍼질 때 자신에 대한 충만한 신뢰로 가득하기를. 지난날의 후회를 만회하는 용기가 보연과의 아름다운 춤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