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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Jul 22. 2021

아무도 감각하지 않는 풍경

설계회사에 몸담고 있었을 때, 처음으로 완공되었던 정원을 기억한다. 큰 역할을 한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과정을 담당한 첫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완성된 첫 공간에서 일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던 선배들이 생각나서 실물을 빨리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운이 좋았는지 도면을 넘긴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완성된 공간을 방문할 수 있었다.     

오월의 햇빛을 받아 빛나는 정원은 정말 아름다웠다. 확인차 가져간 도면 뭉치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한 실망감이 찾아왔다. 그건 그 정원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의도했던 대로 벤치에 앉아 쉬고, 허브의 향기를 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다만, 사람들이 정원에 있는 벤치와 허브를 즐길 뿐 그 공간을 감각하는 것 같지 않는 점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공간은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지만 그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저 사용자가 ‘여기 분위기 괜찮은데’라고 느끼기만 해도 성공적인 설계라고 들은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조경가가 만든 풍경을 구체적인 감각의 대상으로 여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예쁜 디테일을 찍어보고, 특이한 형태는 한 뼘 한 뼘 사이즈를 재보고, 깔끔한 모서리 마감에 감탄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을까 짐작해 보는 식으로. 어쩌면 그 공간이 누군가가 만든 첫 정원일 지도 모르니까. 내년에는 친구들이 만든 첫 공간에 가봐야겠다.


*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0년 1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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