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풍경감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진 Jul 23. 2021

햇빛을 주워가도 될까요?

모교의 새 건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은 ‘햇볕 안 쓸 거면 나한테 주지’였다. 해가 들어올 창을 하나도 내지 않고 벽돌 벽으로 파사드 전체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벽돌이 솔방울 날개처럼 어슷하게 배치되어서, 벽돌 한 장 한 장에 떨어지는 작은 그림자들이 아름다웠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조각 빛을 조금이라도 더 쬐여주려고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옮길 때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햇빛을 주워 오고 싶었다.     

그 햇빛을 내 방에 가져올 수 있다면, 매일 아침 식물이 가득한 풍경이 방 안에 펼쳐질 텐데. 매번 웃자라버리는 민트, 라벤더 같은 허브도 단단하게 키울 수 있을 테고 광량 부족으로 포기했던 에둘레소철, 유칼립투스, (아까시나무가 아닌) 아카시아도 가벼운 마음으로 사 올 수 있겠지. 장미, 작약 같은 꽃나무나 앵두나무 같은 유실수는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하릴없는 몽상을 하다 이미 식물들로 가득 찬 방이 눈에 들어온다. 빛을 좋아하는, 가장 갖고 싶은 식물 대신, 빛 요구도가 비교적 적은 식물들을 하나 둘 모아 온 것이다. 아디안텀, 필로덴드론, 안스리움, 몬스테라, 칼라데아, 베고니아… 구입할 때에는 분명 ‘차선책’이었는데, 내 방을 작은 정글로 만들어버린 이 식물들이 새삼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햇빛을 주워오는 대신 좋은 비료를 주문해야겠다.


*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1년 1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감각하지 않는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