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식물을 산책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거 진짜 꽃이야?” 제주의 한 정원에서, 친구가 무성하게 핀 꽃 덩굴을 보며 물었습니다. 친구가 가리킨 곳을 보니 클레마티스가 마치 가짜 꽃처럼 화려한 꽃송이를 가득 피우고 있었어요. “응. 이건 클레마티스라는 식물이야” ‘이 식물도 물론 알지!’하는 조금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니, 친구가 장난스럽게 한 마디 했습니다. “진짜 꽃인지 물었지, 이름까진 안 궁금했는데~?”... 쳇. 아는 척 좀 하고 싶었던 속내를 들켜버려서, 괜스레 정원을 열심히 구경하는 척했습니다.
고백합니다. 제가 식물 이름을 하나하나 헤아리는 것을 낭만적으로 봐주시곤 하지만, 사실은 현학적인 동기가 그 중심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음을요. 누군가에게 식물 이름을 알려주면, “와 이런 거 어떻게 알아? 신기하고 대단하다”라는 기분 좋은 반응을 돌려받곤 했거든요. (‘관종’일까요? 하하.) 특히 물어본 이가 어려울 거라 예상한 식물(주로 눈에 띄는 식물 중 생소해 보이는 것)의 이름을 물었을 때, 정답을 곧바로 속삭여주는 그 순간만큼은 그 식물을 처음 명명한 사람이라도 된 양 우쭐한 기분이 되곤 했어요.
그래서일까요? 식물 이야기에 호응을 잘해주는 이를 만나면 묻지도 않은 식물 이름을, 심지어 학명까지 자꾸만 이야기하곤 해요. 가령 능소화를 만나면 능소화란 이름과, 꽃이 크다는 뜻을 가진 Campsis grandiflora란 학명, 그리고 비슷한 종인 Campsis radicans, 즉 미국능소화의 이름, 학명과 둘의 구분법까지 줄줄 읊습니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매번 후회하면서도, 자꾸만 누구도 묻지 않은 식물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저와 종종 식물을 산책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합니다. 혹시 제가 너무나 신난 나머지, 식물 tmi를 쏟아낸다면, 장난스럽게 말해주세요. “그것까진 안 궁금했는데~?” 하고요. 조금 머쓱하게 “그래 아는 척하고 싶었다!” 하겠지만, 서운해하지 않을 거라 약속할게요. 저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까요.
2021년 가을,
조현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