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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Jan 08. 2024

빵 반죽을 부풀려주지는 않겠지만

후배가 빵집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와, 조경학과 나와서 빵집을 하다니!’라며 신기해하다가, 나도 플리마켓에서 손님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곧잘 비슷한 반응을 받았던 것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내 책을 살펴보다가) 어떻게 식물을 잘 아세요?” “조경학을 전공했어요.” “(신기해하며) 그림이 많아서 미술을 전공하신 줄 알았어요. 조경이 그림과 관련이 있나요?” “(잠깐 고민하다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공부하고, 조감도 같은 이미지 작업도 많이 해서 도움이 된 거 같아요.”


당연하게도, 조경학을 전공한 것이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도면이나 조감도는 포트폴리오에 들어가지 못했고(결이 맞지 않았다), 그림을 인쇄할 종이로 216g짜리 루프지가 나을지 210g짜리 몽블랑이 나을지 고민할 때나, 저작권은 어떻게 발생하고 출판권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궁금했을 때에는 조경 바깥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림의 어떤 부분은 조경을 공부한 시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말 그대로 뿌리처럼 뒤엉켜 있어서, 깔끔하게 뽑아내어 보여줄 순 없지만.


조경을 공부한 후배는 왜 빵을 굽게 되었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신기해할까? 적어도 확실한 것 하나는, 조경이 빵 반죽을 부풀려주지는 않을 거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공모전 정원을 만드느라 뒷덜미가 까맣게 그을리는지도 몰랐던 8월의 국립수목원과 거의 내 키 만한 졸업작품 모델을 위해 우드락을 자르며 여러 밤을 보낸 설계실을 떠올리면, 이 친구가 구워낸 빵 맛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1년 6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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