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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Jan 11. 2024

나무가 서 있던 자리

학교 광장 자리는 원래 작은 숲이었다. 군대에 다녀오니 가장 큰 나무 세 그루만 띄엄띄엄 남겨 놓고, 광장이 되어 있었다. 학기가 지날수록 이 나무들의 잎은 적어졌고 줄기에 박힌 주사는 많아졌다. 생태실 사람들은 공사 과정에서 뿌리가 많이 상했고, 급격히 변한 환경에 오래된 나무가 적응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새로 생긴 광장이 좋기도 했다. 학교 정문을 가로막는 듯했던 어두운 숲과 달리 별다른 식재나 시설물 없이 탁 트인 광장이 시원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포장된 광장에는 때때로 알록달록한 축제 부스가 들어서거나, 학생들이 기타와 젬베를 연주하곤 했다. 숲이 계속 있었다면 못 보았을 풍경이겠지. 다만 우리가 그렇게 몇 학기를 보내는 동안 나무들은 한 그루씩 조용히, 결국은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 나무들이 서 있던 자리는 비어있다. 같은 재질과 크기의 석재를 재단해 깔지 않고 잔디를 심어둔 모양새다. 그 잔디 위에 가만히 서서, 한때 푸르던 나무들과 오늘의 활기찬 광장을 포개 본다. 있을 수 없는 풍경에서 마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1년 7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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