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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Jan 04. 2024

스트로브잣나무와 개

사철나무, 서양측백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이 식물들은 그 자체보다는 쓰임으로 익숙하다. 무언가를 가리고 막는 데에 자주 쓰이는 나무들. 이 식물들을 보면 떠오르는 개 한 마리가 있다.     


본가 아파트 단지에는 샛길이 있다. 쪽문으로 드나드는 발걸음이 만든 짧은 지름길인데, 적절히 나무를 심어둔 단지 내 보행로와 달리, 식재 밀도가 낮은 이 길에서는 1층 집 안이 보였다. 그리고 이 집 베란다에 그 개가 늘 있었다. 이국적으로 생긴 검고 큰 개(아마 리트리버 종류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는 주인과 산책하는 걸 가끔 보았다고 하셨지만, 나와 마주쳤을 때는 늘 그곳에 조용히 누워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개가 보던 창 밖은 어땠을까?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집 앞에는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하얀 봄맞이꽃이며 개망초 같은 풀꽃과, 누군가 심어둔 노란색 낮달맞이꽃, 소국 같은 화초들이 계절마다 피고 졌다. 조금 떨어진 붉은 산수유에는 직박구리와 참새가 날아들었고, 스트로브잣나무 숲에서는 까치가 울었다. 사람들은 그 풍경을 가로지르며 여름이면 진창을 찰박거리고, 겨울이면 쌓인 눈을 뽀드득 밟는 소리를 냈다.     


언젠가부터 그 개가 보이지 않았다. 여쭤보니 어머니는 이사를 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집 앞은 여전한데, 그 검은 개는 지금 어떤 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1년 5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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