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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Jul 30. 2021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를 읽으며 어떤 멜로디를 떠올렸다면, 나와 같은 시기에 유년을 보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때, 만화 채널을 틀면 애니메이션 주제가인 이 노래가 곧잘 흘러나왔다. '아침 해가 뜨면 매일 같은 사람들과 또다시 새로운 하루 일을 시작해~'로 이어지는 가사를 들으며, 같은 사람들과 매일 보기까지 하는데 하루가 새로울 게 뭐가 있겠냐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 보는 사람 중에는, 그 애도 있었다. 가무잡잡한 탓에 다른 애들이 외국인처럼 생겼다고 놀리면 곧잘 웃어넘겼는데, 가끔은 정말 그렇냐고 묻곤 했다. 우리는 같은 학교와 학원을 다녔고, 운동장 구석에서 자주 빈둥대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매일 보는 그 애’와 보내는 날들이 ‘새로운 하루’가 되었던 건. 등하굣길에는 하얀 감자꽃과 개망초가 피었고, 잠자리가 구름이 떠있는 물웅덩이에 톡 톡 원을 그렸다. 운동장 흙먼지는 뽀얗게 일었고 멀리서 축구하는 애들이 서로 패스를 외쳐댔다.

그런데 그 애는 유학을 가고, 나는 서울로 진학하면서 고향을 완전히 벗어났다. 가끔 우리 동네를 다녀오곤 했는데, 하나 둘 우리가 보았던 풍경들이 사라져 갔다. 감자밭과 공터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우리가 앉았던 운동장 구석 자리에는 강당이 들어섰다.

그 애가 출국하던 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밤에 자꾸 등 뒤로 스쳐만 가던 가로등 불빛이 기억난다. 멀어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린 날 많이 들었던 이 노래에는 지금은 없는 풍경이 여전히 있었다. 잠자리가 날고, 운동장 모래 위엔 축구 골대의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이 풍경과 그곳에 있는 어린 우리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투니버스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아따맘마>의 주제곡이다.

*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1년 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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