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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풍경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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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Jan 29. 2024

그린란드상어의 바다

그린란드상어가 보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수명이 수백 년이나 되는 그린란드상어는 대부분 어렸을 때 시력을 잃는다. 기생충이 이들의 눈을 파먹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도 뛰어난 청각과 후각이 있어 문제없이 먹잇감을 사냥하고 오래도록 생존한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바닷속을 유영하는 그린란드상어에게 풍경은 부재할까? 아니면 어렸을 적 보았던 바닷속을 몇백 년 동안 곱씹으며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고 있을까.


길 한복판에서 끊어지거나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는 점자블록을 본다. 밝은색이 아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올록볼록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안내견이나 동행인의 도움 없이는 이곳에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머나먼 북극해 깊은 곳의 그린란드상어를 떠오른다. 경험해보지 못해서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 풍경, 때론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풍경도. 검고 차가운 밤하늘이 북극해 같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2년 1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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