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의 통화

우울의 잔

by 나율


오랜만이었다. 동생과의 통화는.


외가쪽은 내 밑으로 여동생만 다섯에 남동생이 하나인데, 여동생 중 넷째와의 통화였다.

자그마한 카페를 오픈할 때 궂은 일부터 손이 많이 가는 일까지 모두 도맡아 해주었던 고마운 동생이었는데 카페를 접으면서 연락도 뜸해졌다.

친동생이 아닌데다 카페 오픈 전까지만해도 우린 자주 만나지도,통화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다시 만났을 때 우린 어색함보다 들뜬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

어렴풋한 외갓집 향수를 동시에 간직한 자매들이기에 가능했다.

명절과 어린이날이 있는 봄이면 외갓집 마당을 쏘다녔고, 뜨거운 여름 부모님들이 할아버지께 우리를 맡기고 가시면 발가벗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고, 가을이면 홍시,곶감,송편 풍부한 간식거리를 한아름 품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겨울이면 눈이 소복하게 쌓인 뒷산에 올라 비료포대를 나눠들고 타던 썰매 역시 잊혀지기에는 너무나 화려했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동생과 몇 년만에 재회했을 때 동생은 나보다 이미 머리 하나쯤은 더 커 있었고 ,(워낙에 내가 작은탓도 있다) 내 기억 속의 울보공주병이 아니라 의젓하고 세심한 아이로 자라있었다.


20살이 되자마자 홀로 독립을 결심하더니 우리 자매들 중 가장 먼저 홀로서기에 성공한 아이는 유머도 넘치고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비위를 잘 맞추는 ‘사회인’ 이 되어있었다.


애살있고 다정하며, 누구의 이야기이든 편견없이 진지하게 들어주는, 또래들 중에는 보기드문 속 깊은 아이다.


오랜만에 통화할 때 동생은 여전한 목소리였다.

다정하고 애교가 묻어나는 어투.

듣기좋은 음성이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가 오갔다.

집에 누워있단 이야기만 주고 받는 집순이들인데도우리는 한시간 정도는 넉넉히 통화를 주고 받는다.

그러다 동생이 별안간 새로운 소식이 있다며 들떠서 말했다.



“언니! 나 요즘 어플로 상담받는다?!”



사실 마냥 밝게만 보이는 아이에게도 무력감과 자괴감같은 심리적인 고충이 있다.

때때로 스스로가 모자라게 느껴지면 그 애는 모든 것을 멈추고 싶어했고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또 한번 괴로워했다.

타인의 말은 귀기울여 들어주면서 도통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덕분에 혼자 제 속 갉아먹던 아이었다.



하지만 어플로 상담이라니?



처음엔 의아했다.

아무리 스마트 시대라지만 사람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부분까지 기기의 힘을 빌린다는 점이.


과연 어플 속 대답들이 그 아이에게 힘이 되어줄까?

혹 그 대답들을 정답으로 이해하면 더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 우려와는 달리 아이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밝았다.


동생은 내가 하는 말들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자기자신에게도 긍정적이었다.

마음의 문을 꼭 걸어잠그고 그 속에 갇혀 ‘나는 바보야, 나는 머저리야’하고혼자 자책만하던 그 아이가 문에 걸린 빗장을 열고 한발짝 걸어나오려는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따뜻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고, 또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온다.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해가 뜨는 순간 어둠을 찾아숨고 해가 질 땐 왠지 모를 먹먹함에 울컥 눈물이 터져나오는 인생의 암흑기 같은 순간 말이다.


이불 속 따끈함 속에서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스스로 길을 찾아 이겨내고 있었다.

어플이라고 내가 의심하는 동안에 그 아이는 사소하지만 어플의 힘이라도 빌려 늪처럼 자신의 발목을 당기는 우울감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감탄했다.


나는 내 인생의 매 순간을 작은 우울과 큰 우울 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놀랍고 부러웠다.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진 아이들보다 스스로의 길을 찾기 위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어설 수 있는 그 용기가.


한편으론 창피했다.


박탈감과 자괴감에 사로잡혀

타인의 눈을 피해 숨고만 싶어했던 아직도 유약한 내 마음이 혹여나 들켰을까 싶어서.


나는 여전히 이불 속이고

어플은 아직 깔지 않았다.

해가 뜨는 것을 볼지도 모를 새벽까지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가까스로 우울의 잔 속에서 턱 끝까지 차오른 압박감을 벗어나고자 허우적댄다.


이 글은 나처럼 우울의 어디쯤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고, 응원하고 싶어서 남긴다.


우리는 살아있고, 내 동생처럼 이 칠흙같은 밤을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고, 혹은 나처럼 그 밤을 벗삼아 씁쓸한 위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작은 우울 뒤에 큰 우울이 올지라도 그 다음엔 아침이 온다.

뜨거운 태양이 녹음을 헤치고 끝없는 하늘의 어딘가로 솟구치듯 우리에게도 뜨거운 어떤 날이 온다 .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