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1

by 조일

내 주변은 온통 화나고,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가득했다. 한다며 예뻐하다가도 돌변하여 화풀이하고, 이용하고, 쉽게 버렸다. 그런 속상한 일들이 내 몫의 양육비와 연봉으로 계산되었다. 나는 대체로 괜찮았다. 게다가 나는 부모보다 젊었고, 장은 얼마간 버티다 또다시 보따리를 싸서 이직하면 되었다.


종종 복잡한 감정이 드나들었지만, 그 밥벌이로 어디에 손 벌리지 않고 내 힘으로 부모의 빚을 갚고 먹고 산다는 당당함에 너무나도 취해 있었기에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취해서 속을 게워내고, 신음하며 목말라하면서도 도대체 그럴 이유가 없기에 언젠가부턴 스스로를 나약해빠진 인간이라고 흰 눈으로 대했다.


원하지 않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더라도 이 정도 했으면, 맞아지고 감사해지는 일이어야 했다. 적어도 현재가 주는 보상과 예상되는 미래에 절망하진 않아야 했다. 그렇지만, 매주말 회의를 하고, 그들에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늦도록 폭탄주를 돌리고, 골프를 치는 일정이 더해질 뿐인 미래를 생각하면 이 납작 엎드린 삶이 점점 더 복마전 같이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어서어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해버린 일인데 세상은 쉽게 벗어나게 해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대충해서 되는 밥벌이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왜 그렇게나 속상했던 것일까? 그런들 내 부모는 멈추지 않는다는 현실이 왜 그렇게나 외로웠던 것일까.


아침이면 지금을 떠나는 열차가 매일 울부짖었고, 나는 그저 맥없이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


아버지의 빚을 다 갚고 나니 스스로 일상에 작은 균열들을 내기 시작했다. 새벽녘 혼자 또각이며 퇴근하는 정동길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조용히 이 길을 걸어볼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피곤하지 않은 몸으로 아무 카페에 앉아 그저 그런 소설책과 추리소설 따위를 잡고 입을 뾰족하게 내밀며 읽고 싶었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가슴 뛰는 세상을 구경하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즐거움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바람들이 모였다 틈새로 흘러나가길 반복하며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이제 열차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자신을 북돋우며 떨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직면하게 될 이별들이 느껴졌다. 싼 구두를 신고 있어도 나를 막대했던 세상이 앞으론 어찌 대할지도 두려웠다. 그럼에도 이제 이 절망들을 여기에 두고 떠날 때가 되었음에 벅차고 설레었다.


목덜미가 불룩거리며 피가 돌고, 큰 숨을 내쉬던 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교통사고 소식이 내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아버지의 빚을 갚느라 이렇게 낯선 곳에서 힘들어했는데, 이제야 다 갚고 조금씩 숨쉬기기 시작했는데, 온통 다 죽으려고만 하고 있었다.


*


아버지의 삶이 멈추고, 미약하게 살아 숨 쉬던 것들의 숨통이 차례차례 끊겼다. 애써 키워낸 것들이 뭉텅뭉텅 히며 내는 찬란한 색깔, 알싸한 냄새, 후두둑 소리, 패배감, 외로움, 절망.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기대나 희망 없이 뛰어내렸다. 낯선 곳에 상처투성이로 처박혔고, 이제 예전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음에도 구름이 지나고 해가 뜨고 지는 무심한 일들이 머리 위에 반복되었다. 그 일들은 내가 얼마나 작은지 혹은 그렇게나 작아도 괜찮다는 것을 납득하게 하였다. 그 위안에 힘입어 옹색한 살림살이를 차리고, 당을 배회하는 작은 털북숭이 밥을 먹이고, 내 밥을 지어먹었다. 그러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재미없는 책을 잔뜩 골라온 바람에 읽다가 자꾸만 졸았다.


그저 그렇게 방구석에 앉아 한없이 하찮아지던 그 때, 나도 모르게 소망하던 것들에 도착해 있었다. 내게 기대하거나 혹은 화풀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하느라 끼니를 거르지 않아도 되었고, 해가 지는 모습을 멀거니 보며 이런 저런 후회꺼리도 꺼내볼 수 있게되었다.


그 즈음,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몽구르지 않아도 해를 향해 저절로 자라나 뻗어가는 여름의 나무처럼.


나는 늘 떠나고만 싶어 했는데, 떠나온 후에야 처음으로 머물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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