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휘파람을 불고 있다

2024.2.14.

by 친절한 James


X는 길을 거닐고 있었다.

메마른 공기처럼 마른 나뭇가지가

가득한 H공원, 12월의 바람을 가르며

X는 공원 산책길을 걸었다.

직장에서 도보로 20여 분 떨어진 이곳을

가끔씩 찾곤 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매일은 아니지만 뭔가 답답하거나

바람 쐬고 싶을 때 찾곤 했다.

그럴 땐 공원 생각이 나기도 했으니까.

마침 날씨가 나쁘지 않아

간단한 점심을 먹고

여유로운 걸음을 옮겼다.

야트막한 골목길을 지나

초등학교를 옆에 끼고

구불구불한 이차선 도로를 따라갔다.

기념관과 운동장 너머 마주한

익숙한 입구가 무심한 인사를 건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곧 새해니까,

X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판을 지나쳤다.


사람은 속을 썩여도

공원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게 좋았다. 크게 바뀌지 않는 듬직함.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꽤 쌀쌀한 기온에 몸이 움츠러드는데

오전, 오후의 경계가 맞닿은 시간 언저리,

짧은 여유를 털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테이블에 자리 잡고 커피를 마시며

한바탕 수다를 떠는 무리,

운동기구가 포진한 작은 언덕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몇몇,

굽이친 길을 따라 옆으로,

그리고 뒤로 걷는 어떤 이.

어떤 사람은 이 기온에

맨발 걷기를 하고 있었다.


공원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입구 안쪽 작은 시계탑 주변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촘촘한 미니 숲을 이루었는데

이 일대는 참새 떼가 터를 잡고 있었다.

과장 조금 보태 100마리는 넘을 듯했다.

그들이 한꺼번에 지저귀는

강렬한 사운드가 주변을 장악했다.

나무마다 스피커를 붙여놓은 걸까.

세밀하며 웅장한 음색이 인상 깊었다.

X는 소리를 녹음하러 가까이 다가갔는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일순간 조용해졌다.

나무 사이에서 한참 기다렸지만

소용없었다. 눈치는 빨라.


X는 발길을 돌려 공원 안쪽으로 들어섰다.

동상과 조형물이 정오의 햇살을 음미하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길모퉁이를 도는데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휫휘휘, 휘휘휘휘휘~"

누군가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음정과 음률이 예사롭지 않다.

누굴까. X는 호기심이 생겼다.

1분쯤 걸으니 작은 언덕 위 벤치에

어떤 사람이 앉아있었다.

가녀린 뒷모습에서 앞으로 뻗은

왼 손바닥에는 참새 한 마리가 앉아서

뭔가를 주워 먹고 있었다.

아, 아까 그 소리는 새를 부르는 신호였나.

참새는 평소에 사람과 안 친한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재주도 좋다. 발소리를 줄여

가까이 다가갔는데 참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에 한창이다.

어라, 곧 다른 새들도 날아와 기웃거렸다.

그 사람은 옆에 놓아둔 봉지에서

흰 알곡 한 줌을 꺼내 앞쪽에 뿌렸다.

어디선가 새들이 엄청 날아왔다.

아까 시계탑에 있던 녀석들이 다 왔나.

그 모습이 귀엽고 신기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차,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잘 먹어라, X는 혼자만의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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