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13.
"와, 멋지다."
빠닥빠닥한 늦바람이 감도는 시간,
천구(天球)에 드리운 거대한 암막 커튼이
고요한 펄럭임으로 밤의 무도회를 펼쳤다.
깨소금처럼 그윽한 별빛들이 내려앉고
콩알 같은 비행기 불빛은 늦을세라
총총거리며 한구석으로 달음질쳤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밤하늘 한가운데
노르스름한 함박웃음, 보름달이 희노랗다.
정월 대보름이 별똥별을 데리고
그들을 찾아온 날이었다.
R과 S는 옥상에 있었다.
R이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3층 벽돌 주택의 꼭대기,
용접해서 덧붙인 철제 사다리를 오르면
풀숲 빛깔을 흉내 낸 우레탄 공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지.
잡동사니 몇 마리가 웅크리고 있던 구석은
서해 어느 밤바다를 닮은 암흑에 덮였고
비와 햇볕에 주름을 드리운 바닥도
검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을 했다.
여기는 인공 불빛이 잘 보이지 않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기 좋았다.
"잘 보이니?"
어느새 R의 아버지가 따라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무언가 걸려 있었다.
"이걸로 보면 더 잘 보일 거야."
그는 R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눈알을 번뜩이며 숨 쉬던 그것,
쌍안경이었다.
방금 전까지 스마트폰으로 달을
촬영하던 R과 S는 신문물과 접안했다.
아, 이럴 수가. 엄지와 검지를 벌리며
겨우 마주했던 원이 눈앞에 착 달라붙네.
너무나도 크게 다가온 달빛에
뒤로 주춤 물러설 정도였다.
이렇게 맑고 깨끗하게
달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처음인 것 같다.
표면 일부가 조금 그을린
유리 전구를 들여다보는 것 같네.
스위치를 내리면
불이 꺼질 것 같은 느낌.
손을 뻗으면 온기가
피부에 닿아 저릿할 것 같은 기분.
토끼가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곳에 있다면 꼭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야 할 것 같네.
짧지만 깊은 추억도
3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R이 한때 함께 살았던 그곳,
이제는 기능이 다해가는
쓸쓸한 분위기를 하나씩 더해가는 곳,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도 다른 주거로
곧 떠나야 할 듯한 집.
아직 쌍안경은 방에 걸려 있지만
렌즈에 담을 풍경도 차츰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그리운 밤도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