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에 대해 써라
2024.3.7.
by
친절한 James
Mar 7. 2024
아버지, 가깝고도 먼 이름.
아른거리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투명한 유리벽 너머 서성거렸다.
그 실루엣은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점점 옅어지다가 하얗게 증발했다.
반짝, 세상이 환해졌다가 암흑이 됐다.
J는 뒤척임을 뒤로하고 잠에서 깼다.
J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많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는 잘 기억나지 않았고
학교 갈 무렵엔 조부모 집에서 컸다.
아버지는 1년에 몇 번 찾아오지 않았다.
J는 친구들 집에 종종 놀러 갔는데
친구를 초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J는 어머니가 두 번 바뀌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 잘 모를 일이었다.
J는 어머니의 말은 무조건 따랐다.
어머니는 J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애썼고 온정으로 살폈지만
J의 자립성을 잘 세워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부분에서
복잡한 얽힘을 조장했다.
그런 J에게 결혼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J는 종교가 없었는데
배우자를 만나며
종교 생활을 했다.
아내와 함께 간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라, J는 처음에 낯설었다.
J에게 아버지는 친근하지 않은,
자주 보지 못한 대상이었기에.
이 땅에 태어날 수 있게끔
생명을 주신 분이었지만
추억이 별로 없던 분.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어리기만 할 것 같았던 J는
어느덧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다.
J는 아버지가 되었다.
어색하고 멋쩍은 이름, 아버지.
새 생명이란 참으로 놀라웠다.
J는 자기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먹고 자고 울고 웃는 이 작은 생명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우는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명절이 다가왔다.
J는 아버지 댁을 찾았다.
결혼해서 다른 지역에서 살며
한두 달에 한 번씩 찾아뵈었는데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자주 오지 못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마주 앉아
함께 하는 식사.
J는 육아 이야기, 자기 어릴 적 이야기,
요즘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아버지를 보았다.
아, 참 많이 늙으셨다.
얼굴 주름은 늘고 흰머리가 짙어졌다.
원래 마르셨지만 살집이 더 준 것 같아.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J는 아버지를 닮았다.
특히 아버지의 눈을 빼닮았다.
총기 어린 반짝이는 눈,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
나이가 들수록
J는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아갔다.
되돌릴 수 없는 노화로 뒤덮인
눈망울 속에 조그마한 J가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당신의 그 눈으로
내가 크는 과정을 지켜보셨겠지.
지나간 그 눈빛 속에 사랑을 좀 더
담아주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먼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나와 아버지의 관계가 굳건하지 못하면
내 아이와의 관계 또한 그럴 수 있기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도
아이를 낳아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J는 아버지의 눈을 흘깃거리다
마음이 이상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J는 서둘러 밥을 먹고 일어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울컥한 눈시울을 얼른 문질렀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다시 보았다.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신 건 아니었을 거야.
보고 싶지 않아서 안 오신 건 아니었을 거야.
덕분에 이렇게 잘 커서 가정도 이루고
아버지를 닮은, 그리고 나를 닮은
아들도 낳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푸른 하늘에 향긋한 미소 한 겹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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