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방에 혼자 있다
2024.6.2.
by
친절한 James
Jun 2. 2024
이 작은 방이라는 곳,
천천히 걸어도 1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공간.
여기서 그녀는
많은 꿈을 꾸고 눈물을 흘렸다.
가끔 미소 번지는 아침햇살이
그녀의 머리맡을 두드리곤 했다.
침대 위쪽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쪽창이 외부와 맞닿은 유일한 틈새다.
2층 다락방 모퉁이에 놓인 침대에서
그녀는 희망을 품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렸다.
우산처럼 비스듬한 천장에서
세월의 향기를 품은 나뭇결이 물결쳤다.
하도 오랫동안 보아왔기에
이제는 흠집, 얼룩, 옹이 하나하나까지
안부를 묻고 말을 거는 친구가 되었다.
침대와 맞은편 벽 사이에는
의자가 하나 놓일 작은 통로가 있고
그곳에 깔린 밤갈색 판자 마루에서는
매일 그녀에게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하는 누군가가 있다.
거의 비슷한 듯해도
잘 들어보면 매일 소리가 다르다.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아침에는
경쾌한 클래식 음악이,
슬픈 감정이 복받치는 밤에는
눈물 어린 하소연이
삐그덕 한숨을 지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판자마루의 감촉을 만끽했다.
두 발로 설 수 있고,
이렇게 걸을 수 있고,
매일 네가 건네는
인사도 들을 수 있지.
헝클어진 어제 같은 하루일 수도,
꿈꾸던 내일을 닮은 오늘일 수도,
아직 알 수 없지만 부딪쳐 보는 거지.
언젠가 낡은 간이역 책방에서 집어든
글귀 한 줄을 그녀는 매일
기도문처럼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침대의 한쪽 면은
컴컴한 천장벽 모서리와 맞닿았고
다른 한쪽은 간이 책상을 향했다.
그녀가 침대에 누워 손을 뻗으면
책상에 손 끝이 닿을 듯 말 듯.
팔 하나 사이에 두고
그녀가 품었던 수많은 생각들이
이제는 희미해져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새벽부터 보슬비가 내렸다.
그녀는 쪽창 앞에 턱을 괴고
밖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쪽창과 이어진 발코니에는
이름 모를 꽃과 풀잎이
사뿐 피어올랐다.
쪽창으로 나갈 수 없어서
창문을 열어도 그녀 손에는
닿지 않는 꽃, 바람이 불 때는
닿을 듯 말 듯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
옅은 보랏빛 속 흰 줄무늬 새긴
귀여운 너, 한번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는걸.
언제부턴가 그녀의 머릿속에
담긴 생각들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비가 오면 흙냄새 속에 저민
얇은 꽃향기가 침대 머리맡을 두드렸다.
너와 나는 서로 곁에 있어도
만날 수는 없네.
그녀는 우산을 내려두고
외투를 옷걸이에 걸며 중얼거렸다.
아침에 가볍게 산책하려던
마음은 접었지만 대신
꽃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기기로 했다.
상상 속으로 푹 빠지는 것도 산책이지.
정신의 산책, 좋잖아.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방, 공간,
내가 있는 곳.
벽과 벽으로 둘러싸인 곳.
벽 너머는 보이지 않고
외부와 구분된 곳.
하지만 이곳이 다는 아니지.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야.
벽이, 바닥이, 천장이,
그리고 문과 창문이
모두 투명하면
방이 어떨까.
방 안에 있지만
방 밖에 있는 느낌,
밖에서도 안이 보이고
안에서도 밖이 보이는 곳,
보이긴 해도 들리지는
않을 수 있지.
그건 다 보는 걸까.
혼자 있는 건 외로움일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과정일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혼자,
혼자 있음을 기다리는 시간,
혼자 있음이 혼자는 아니다.
생각과 기억 속에 있으면
여기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지.
내가 여기 있음이
혼자가 아니라면
방 안에서도, 방 밖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오롯이 나로 있고
나와 내가 아닌 모든 것,
이 두 가지는 따로가 아닐 거야.
나라는 구분도, 방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침부터 이어진 생각들이
송진가루처럼 방 곳곳에 흩날리며
새로운 생각을 피워냈다.
난 생각하는 게 좋아.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
맨날 생각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네. 그리고 그 모든 생각,
상상이 이루어지면 더 좋겠지.
이렇게 그녀의 하루가
오늘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는 방에 혼자 있다.
그녀는 방에 혼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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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작가연습 프로젝트 6
23
붉은색 자동차
24
벽장 뒤쪽에서
25
그녀는 방에 혼자 있다
26
'그는 모든 두려움을 사양한다'(피에르 레버디의 작품)
27
지금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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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뒤쪽에서
'그는 모든 두려움을 사양한다'(피에르 레버디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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