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게 있다
2024.6.7.
by
친절한 James
Jun 7. 2024
시간은 바람처럼 불어온다.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오고 흘러간다.
바람의 존재는 바람의 부재로 분명해진다.
시간을 잊고 살지만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한 순간이 있고
그래서 시간이 가슴을 더 깊숙이 파고든다.
"고백할 게 있어."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벚꽃나무 가지 같은 U의 마음이
바스락 갈라졌다.
뭔지 모를 두려움과 은은한 기대감,
촉촉한 설렘이 새어 나왔다.
"뭔데?"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을 거란 듯,
태연한 느낌을 담은
O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사실, 나 말이야, 계속 생각해 봤는데..."
생각, 무슨 생각, 만남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생각? 뭐지?
뜸 들이지 말고 말해줄래?
열 걸음쯤 나아갈 짧은 시간 동안
U의 머릿속에는 망설임과
쑥스러움의 파도가 몰아쳤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잘못 말하면 다 망치는 건 아닐까,
걷는 게 걷는 게 아니다.
멋쩍은 눈길은
땅바닥을 뚫고 터널을 팔 듯
그르렁거렸다.
앞으로 걷는데
나는 가만히 있고
풍경만 뒤로 말려드는 것 같아.
더 걸으면서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 잠깐 저기 카페에서
차 한 잔 하고 갈까?"
목구멍에 차오른 말을 삼키고
코를 스친 한마디를
U가 내뱉었다.
"아, 그래?"
잠깐의 어색함과 고민,
"그래, 좀 쉬었다 가자."
길을 걸으며 말을 꺼내기는
좀 그렇고 어디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자.
아찔한 탈출구를 찾던 U는
카페 안 창가 쪽
나풀거리는 산세베리아를 낀
회백색 테이블로 향했다.
내딛는 걸음마다
두근두근 울렁임이 솟구쳤다.
"자리 맡고 카운터에서 메뉴 보자."
"아, 여긴 테이블에 메뉴가 있네."
긴장한 듯 빳빳한 손바닥 크기의
메뉴 쪽지가 무심한 은백색
스탠드에서 서성거렸다.
나를 볼 테면 보라는 듯
도도한 자태를 풍기면서.
주섬주섬 메뉴를 집어 들고
시험지 읽듯 글자를
훑어 내며 내려가다가
두 사람은
루이보스와 캐모마일 차를 주문했다.
물 끓는 시간이 이다지도 길었나.
U의 머릿속이 뿌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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